읽기에 앞서: 이 글은 혐오나 혐오표현 개념 자체를 다루는 글이 아니라, 혐오나 혐오표현이 오로지 한 성별에 대해서만 할 수 있는 태도나 행위이고, 다른 성별에 대해서는 성립조차 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이다.
혐오와 혐오표현 개념 자체에 대한 문제는 별도로 다루기로 한다.
페미 진영의 매체들이 극단적 개념 사용에 주저함이 없는 이유는 검증받지 않은 주장을 공인된 논리로 제공하는 학자와 논객들이 다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진영 안에서 서로가 서로의 주장에 공적 권위를 부여하는 '돌려막기'를 통해 스스로 혐오의 유일원리를 정립한다. 페미 진영의 학자가 검증 없는 논리를 펴면 페미 진영의 매체는 이를 권위 있는 전문가의 말로 인용한다.
그런 후 페미 진영의 운동가들은 학자와 언론 보도를 근거로 이를 진리라 공표하고, 부화뇌동하는 정치인과 독자적 사유가 없는 각계각층의 인사들은 전문가, 언론, 활동가들의 권위를 보증삼아 이를 유일 원리로 습득한다. 아무런 논증이 없이 제시된 개념과 주장은 상호 보증과 권위 돌려막기를 한 바퀴 통과한 후 어느새 전문적 검증을 거친 정당하고 합리적인 주장처럼 되어버린다.
누군가 그에 비판적인 견해를 표하거나 검증을 요구하면 마치 초보적 상식마저 결여된 사람으로 취급하며 공부하라는 면박을 준다. 한 사회의 지성이 파탄나는 과정이다. 대표적인 예로, 이들이 주장하는 '혐오' 개념을 보자.
페미 진영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혐오는 강자가 약자에게 가할 때에만 성립된다'
▶'혐오는 소수자 집단에 대한 차별로 작동할 때만 혐오이므로 강자혐오는 존재할 수 없다'
▶'남성은 강자이므로 남성혐오는 존재할 수 없다, 혹은 존재하기 어렵다' ’혐오표현의 자유는 없다.‘
이들의 주장 안에서 혐오는 misogyny였다가, hate였다가, disgust였다가, hostility였다가, hatred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그 모두를 섞어넣고 모호하게 우왕좌왕한다. 페미 진영이 담론장을 장악하고 개념을 조작하는 힘을 가지지 못했다면 위의 규칙만이 참이라는 주장은 진즉 지성의 전당에서 조롱거리로 전락했을 것이다.
법학자, 여성학자, 인권연구자, 인권운동가, 여성운동가, 약자와 소수자를 위해 싸운다는 진보적인 활동가들이 반복하는 언사를 보자.
이들은 한결같이 '남성혐오'는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는 혐오라는 개념이 약자가 강자에게 가할 때에만 성립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홍성수(법학자, 교수): '남혐'은 성립하기 어렵다. 혐오의 문제는 욕, 비난이 소수자에게 해악을 끼치는지 아닌지다. (...) 특히 소수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나 편견이 담긴 동시에 이들이 겪는 차별을 고착화하는 경우라야 혐오 표현에 해당한다.
▶정희진(여성학자): 혐오는 기본적으로 약자에 대한 강자의 감정이다. 다른 사회운동에 대입해 봐도 ‘남혐’은 어불성설이다.
▶이라영(예술사회학자): ‘젠더 권력’이 작동하는 사회에서 남성혐오는 가능하지 않다. 그럼에도 남성혐오, 남성혐오, 남성혐오를 반복하면서 아무 어휘에나 ‘남성혐오’라는 딱지를 남발하는 차별주의자들이 점점 공적인 목소리를 낸다.
▶나임윤경(문화인류학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 ‘남혐(남성 혐오)’은 단어 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약자이기 때문. 힘의 균형 자체가 맞지 않는 상황에서 ‘여혐’과 대립 구도로 남혐을 거론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논리이다.
▶이나영(사회학자, 교수): “남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백인혐오’가 존재하는가? (...)혐오발언은 효과를 봐야 한다. 특정 집단을 열등한 집단으로 만들고 그럼으로써 차별 구도가 확증, 재생산돼야 혐오다.
이들 발언의 공통점을 보자. 이들은 모두 여성혐오에만 주력하며 남성혐오의 개념은 성립될 수 없도록 아예 정의 단계에서부터 한정을 해버린다. 즉 남성은 강자, 여성은 약자로 규정한 뒤 약자의 강자에 대한 혐오는 성립할 수 없다고 정의하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차별주의자’라는 비난까지 한다. 이들은 남성혐오를 혐오 개념에서 제외하는 의미론적 조작을 한 뒤, 남성혐오 자체가 처음부터 포착되지 않도록 굴절된 렌즈를 씌운다.
그러한 조작을 통해 남성혐오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 오늘날 담론장을 장악한 학자들의 반지성적, 비윤리적 행태다.
이런 식으로 강자 / 약자와 같은 힘의 전반적인 균형에 대한 규정을 개념 조작에 허용한다면, ‘폭행’의 개념 또한 조작이 가능하다. 가령 ‘‘폭행’이란 약자의 신체에 대한 강자의 유형력의 행사’라 정의한 뒤, 강자에 대한 폭행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쳐도 타당할 것이다.
‘모욕’도 가능하다.
‘‘모욕’이란 강자가 약자에 대해 구체적 사실을 적시하지 아니하고 추상적 관념을 사용하여 사람의 인격을 경멸하는 의사를 표시하는 것을 말한다’고 정의한 뒤, 강자에 대한 모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쳐도 타당할 것이다.
'혐오표현'에 대한 국제사회의 정의를 보자
본디 혐오표현이나 혐오범죄가 사회문제가 된 배경은 인종과 종교를 매개로 한 갈등 때문이었다.
세계 각국이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나 증오범죄에서 가장 앞세우는 요소도 인종이다. 성별은 몇 순위 뒤에 거론된다. 유독 한국에서는 성별을 가장 앞으로 끌어와 강자에 대한 혐오는 혐오가 아니므로 남성혐오는 존재할 수 없다는 독특한 개념이 주류 견해로 주장되고 있는 현실이다.
권위 있는 사전, 국제규약, 해외의 법원, 국제인권단체 등에서는 혐오표현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필자는 혐오표현에 대한 국제적인 개념 정의와 규제 동향에 대해 좀 더 정확한 정보를 담아 별도의 글로 재정리(링크클릭) 하였다.)
■ 인종, 종교, 성별 또는 성 정체성에 근거하여 개인이나 집단에 대하여 증오를 표현하거나 폭력을 선동하는 대중적 행위, 또는 특정한 인종과 같이 일정 집단에 대하여 폭력을 야기할 수 있는 의사전달로서 적대감 표출 이외의 다른 의미가 없는 표현(케임브리지 사전)
■ 인종적 우월성이나 혐오(hatred), 인종차별에 대한 선동에 근거를 둔 관념(ideas)의 보급, 그리고 상이한 피부색이나 종족의 기원을 가진 인종이나 집단에 대한 모든 폭력행위 혹은 폭력행위에 대한 선동(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 인종적 혐오를 퍼뜨리거나 선동, 고취, 정당화하는 모든 형태의 표현 혹은 제노포비아, 반유대주의, 불관용에 근거한 기타 형태의 혐오(유럽인권법원)
■ 국가적, 인종적, 종교적 집단(표적집단)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격앙되고 불합리한 비난, 적의, 혐오의 감정을 공개적으로 조장하여 차별, 적대감, 폭력 등 임박한 위험을 만드는 발언(국제인권단체 아티클 19, 캄덴원칙)
이처럼 현재 혐오표현에 대해 우리 사회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합의된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라별로 모두 다른 형태의 개념 정의와 규제 양상을 보인다. 그럼에도 공통된 것은 여하한 인종, 국적, 종교, 성별 등을 이유로 한 적대적, 폭력적, 차별적인 표현은 혐오표현에 포함된다는 점이다.
인종 중 특정 인종, 성별 중 특정 성별, 국적 중 특정 국적을 이유로 한 표현은 제외된다는 식으로 개념이 정의되지는 않는다.
국제적으로 혐오표현에 대한 정확하고도 현실적인 상황 설명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세계 어느 나라, 국가, 기구에서도 혐오표현의 개념을 통일적으로 명확하게 규정하지 못한다는 것.
둘째, 규제를 표방하는 국가에서도 백인, 남성, 기독교 등 소위 '강자, 다수자'라 규정되곤 하는 집단에 대한 혐오에 면책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
즉 인종이나 피부색 등을 이유로 한 혐오라는 '행위'가 기준이지 '행위자 또는 행위의 대상이 되는 자의 정체성이나 속성'은 기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백인혐오는 성립할 수 없다는 이나영, 진중권 등의 주장과 달리 미국은 백인에 대한 인종적 편견에서 비롯된 증오행위를 처벌한다. 미 연방수사국(FBI) 통계에 따르면 2019년 증오범죄의 48.5%가 반(反)흑인, 15.7%가 반백인 편견에서 비롯됐다. 아시아계는 4.4%다.
흑인과 소수인종일지라도 증오범죄에서 예외일 수 없다. 이나영 등의 주장을 따르자면 백인을 증오하는 흑인이 백인은 마땅히 범죄를 당할 만하다며 살해, 폭행, 감금을 하여도 그것은 인종적 증오범죄가 아니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러나 미국에서 증오범죄 제재가 그런 기이한 개념을 기초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은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도 알 수 있다.
더구나 최근에는 아시안을 향한 인종적 적대 행위가 늘어나는 추세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이후 이러한 행위가 증가했고 흑인이 가해자인 경우도 상당하다.
아시안은 미국에서는 인종적 소수자이지만, 흑인과 달리 인종에 관한 적극적 우대조치의 대상에는 대부분 포함되지 않는다. 한·중·일과 같은 동북아시안의 사회경제적 상황은 평균적으로 흑인보다 낫다고 평가된다.
이나영에 따르면 혐오(hate) 개념 자체가 강자가 약자에 대하여 가하는 행위에만 결부되고 증오범죄(hate crime)는 강자와 약자의 관계에서만 성립되므로, 흑인이 한국인에 대해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범죄를 저질러도 단순한 살해, 폭행, 감금에 해당할 뿐, 증오살해나 증오폭행, 증오감금에 해당하지는 않는다는 결과가 된다.
이러한 결론은 부당할 뿐 아니라 사실과도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살펴볼 때 세계 각국의 혐오 규정과 규제 양상들이 시사하는 바는, 혐오란 대상을 막론하고 누구에게서 누구에게든 행해질 수 있으며 더 큰 강도로 피해를 체감하는 집단이 존재할 수 있음을 유의하고 계몽해야 하지만, 혐오행위 자체가 정체성 신분에 따 정당화되거나 옹호되는 경우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점이다.
한국의 현실은?
그러나 한국의 현실을 보자. 학자들이 혐오의 개념을 왜곡하면 유명 논객은 타당한 검증 없이 이를 확산시킨다. 사려 깊은 취재가 없는 기자들은 이러한 개념을 마치 공인된 것인 양 기사에 담는다.
조작된 개념을 프로파간다로 사용하는 기자와 기사들이 너무 많아 일일이 예를 들기가 어려울 정도다.
▶진중권: '혐오발언'이라는 것은 그저 모욕적인 표현이 아니라, 특정한 집단에 대한 모욕이 그 집단에 대한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지는 구조에서 성립하는 단어다. 가령 미국에서 백인에 대한 경멸적 표현은 그저 '모욕'에 불과하다. 소수인종이 다수인 백인들을 차별하는 구조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흑인이나 아시아인에 경멸적 표현을 사용하면 '혐오'발언이 된다. 왜? 그 발언이 소수인종에 대한 구체적인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남혐도 문제다라는 해괴한 소리를 한다. 남성에 대한 모욕적 발언이 남성집단에 대한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지는 구조 따위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강나연(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 남성혐오는 애초에 성립되지 않는 개념이다. 남성혐오와 여성혐오는 대칭적으로 쓰일 수 없다.
▶손가영, 김예리(미디어오늘 기자): ‘남성 혐오’ 용어는 단적인 예다. 혐오는 강자가 약자에 행하는 차별·가해 행위다. 남성과 혐오의 합성어가 타당한지부터 논란이다.
▶종합일간지 남성 A기자(손가영, 김예리가 인용): 남성들이 말하는 혐오는 대개 조롱이나 무시 정도에 그친다. 혐오란 일반적으로 여성, 유색인종, 성소수자 등이 소수자성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위계에 따라 멸시받고, 차별과 폭력, 더 나아가 생명의 위협까지도 느끼는 상황에 놓이는 것.
▶곽재훈(프레시안 기자): '남성 혐오'는 성립될 수조차 없는 말이다. 여성혐오와 달리 '남성 혐오'는 실재하지 않는 상상된 개념.
우리는 위의 발언들을 통해 페미 진영의 학자-논객-기자들을 거치며 진영 내의 ‘상호 보증’과 ‘지적 권위 돌려막기’로 지성이 파탄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지적 권위 돌려막기란 중요한 지성적 논증의 대상이 되는 논지에 대해서 성공적 논증을 펼친 적은 없으면서, 외관으로는 이미 논증을 마친 결론인 듯 말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이런 방식을 사람만 바꿔가며 되풀이해서 인용해주는 행위를 말한다.
실제로는 없는 뒷받침 논증을 마치 있는 것처럼 착각하도록 대중을 교란하는 것이다.
특히 혐오 개념을 사용하면서 그 개념을 정의하는 단계에서부터 특정 성별은 피해자가 될 수 없거나 특정 성별은 가해자가 될 수 없도록 정의하는 홍성수, 정희진, 이나영 같은 연구자들은 특수한 논증 책임을 지게 된다.
만일 누군가 ‘혐오표현, 혐오범죄라는 개념 자체가 남성은 피해자가 될 수 없도록 정의된 개념이고 이것이 세계적인 표준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세계적으로 합의되었다거나 학계에서 이미 확립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타인의 정신을 자신의 의도대로 조작하고 지배하기 위해 거짓을 동원하는 사람이다.
연구자라면 불성실과 윤리성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진실되고 책임 있는 사람이라면 ‘혐오표현, 혐오범죄 제재 등에 쓰이는 혐오 개념은 인종이나 국적, 종교, 성별, 피부색 등을 이유로 한 적대적이거나 폭력적이거나 차별적인 행위를 모두 포괄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실제 그런 개념을 기초로 한 제도를 운용하고 있는 나라들에서도 그와 같이 사용되고 있다.’ 는 것을 우선 인정하여야 한다.
그런 후, ‘그러나 나는 그와 견해를 달리하여 내가 발언하고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나라, 한국에서는 특정 성별에 대한 적대적이거나 폭력적이거나 차별적인 행위는 아예 포함조차 되지 않도록 하는 특수하게 한정된 개념으로 정의하여 쓰고자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라고 자신의 개념 정의가 독특하고 별나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밝힌 후 이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는 논증을 성실히 전개하여야 한다.(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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