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 착취자의 나라'를 읽고

이선옥 승인 2018.04.20 23:18 의견 0

오랜만에 쓰는 리뷰.

좀 깁니다.
2017.08.28 00:29   조회 수 2454
  <중간 착취자의 나라>를 읽고 (이한 지음/ 미지북스) -별점: 5점 만점에 4.9(이유는 본문에 설명) -한 줄 요약: 이니님이 다음 휴가에 이 책을 읽었으면 이 책은 새로운 시각, 명쾌한 논증, 설득력 있는 대안을 모두 충족한다. *새로운 시각: 차별보다 정의 비정규직 문제에서 공허하다고 생각해 온 논쟁이 ‘비정규직 철폐냐, 비정규직 차별철폐냐’ 하는 것이고, 난감한 비난이 ‘귀족 정규직 노조 대 노예 비정규직 노동자’ 라는 대결 구도를 설정하고 정규직의 양보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필자는 오늘 비정규직이 안고 있는 문제들은 모두 독자적인 문제이며, ‘정규직과 대비하여’ 생기는 비정규직-정규직’ 문제가 아니라 ‘비정규직’ 고유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정규직을 어떤 식으로 조절한다고 하여 사라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 이런 인식이 오히려 비정규직 제도 고유의 문제를 지워버린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솔깃해진다.

그럼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뭐지? 우리는 흔히 비정규직 문제의 키워드를 ‘차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차별의 대상을 정규직으로 두고 그 격차를 줄이는 해법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필자가 제시하는 비정규직 문제의 키워드는 ‘정의’다. *명쾌한 논증: 왜 정의인가? 그리고 국가는 정의를 실행할 책임이 있다 필자는 왜 차별보다 정의가 기준인지, 정의가 기준이 될 때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이 왜 더 명확하게 보이는지를 설명한다.

분배와 관계되는 제도 자체의 정당성 문제는 정의의 원칙에 비추어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게 필자의 설명이다.

4장 ‘정의의 원칙으로 본 비정규직 문제’에서 롤즈(John Rawls)의 정의론에 기반해 이를 명쾌하게 논증한다. 또한 경제문제로 좁게 보고 기업과 노동자의 문제가 본질이며 국가는 조정자로 한정하는 경향성을 비판하며 국가의 의무를 강조한다.

비정규직 문제에서 자본이 주장하는 합리성과 효율성은 ‘개별기업에서 합리적인 선택이 사회 전체적으로 합리적이지 않다’는 점을 간과한다.

결국 공동체의 정의를 실현할 최종 책임자는 국가(정부)다. 규범과 호혜성의 원칙을 설명하는 4장에서는 비단 비정규직 문제 뿐 아니라 최근 우리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갈등에 대해서도 고찰하게 한다.

나는 문화혁명의 비극을 고발한 <백 사람의 십년>이라는 책을 여러 번 추천했다.(꼭 읽으세요) 어떤 이는 그 책을 칭송하면서 동시에 웹상에서 타인을 지목해 조롱하고 난도질한다.

홍위병이 했던 일이다.

자신의 행위가 그 책이 지적하고 있는 비극의 원인이라는 것을 모른 채 칭송하는 걸 보면 대체 책을 왜 읽는가 회의가 든다. 내가 좋아하는 책은 다른 사안에도 문제를 관통하는 근본을 일깨워 적용하게 하는 것인데, 이 책의 4장이 그런 역할을 한다.

정의와 규범, 공동체, 민주주의, 협동 같은 가치에 대해 곰곰 생각하게 해 준다. *설득력 있는 대안: 간접고용 제도의 개선, 기간제 비정규직에게 130% 더 많은 임금을 노동법과 헌법, 법철학 전문가답게 필자는 사회정의의 원칙에 기반해, 현실적인 실행이 가능하면서도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충족시키는 해법을 제시한다.

왜 그런지는 책 6장과 7장을 보면 된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비정규직 문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간접고용 문제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대안을 제시한다.
1.

그 실질이 간접고용을 판별되는 사내 하도급은 금지한다.
2.

파견은 두 가지만 허용한다.

첫째, 파견업체가 수요가 탄력적이고 급격히 변동하는 산업 부문에서 고용 완충제로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고용계약을 맺고 여러 사업장에 연결시켜주는 형태로 사업을 할 때, 둘째, 파견업체가 독자적인 설비와 장비, 전문적인 기술이나 지식, 노하우와 훈련 체계를 갖추고 사용업체에서 일회적 또는 일정 기간만 필요한 일을 할 때.
3.

금지된 파견이나 사내하도급을 한 경우에는 노동자가 원청과 직접 고용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간주한다.
또 다른 비정규직 문제인 기간제 노동자에 대한 대안은 "임금 외 근로조건에서 차별을 없애는 데 더해, 정규직보다 시간당 1.3배의 임금을 더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동종, 유사 정규직 업무가 아예 없는 경우에는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1.3배를 받는다.  
  *또 다른 장점들 지금까지 노동계와 진보진영에서는 비정규직 문제에서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하되 사유 제한을 조정하는 입법론 쪽에 주력해 왔다.

하지만 그 주장은 "자본으로 하여금 고용에 적극적이 되도록 한다는 비정규직 사용 본래의 사회적 기능을 아예 고려하지 않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위 해법은 부작용과 충격뿐 아니라 사회적 기능을 함께 고려한다는 면에서 정치적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이 책은 비정규직, 간접고용, 기간제 노동, 도급과 하청, 중간착취 등의 개념에 대해서도 정돈하여 보여준다.

그리고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고용안전판이라는 신화, 정규직노조가 이익을 위해 비정규직을 유지한다는 신화에 대해서도 연구결과를 들어 반박한다.

또한 비정규직 제도 개선의 핵심, 간접고용에 대한 대안적인 제도, 사법부와 입법부의 변화가 필요한 지점도 함께 제시한다. 이 책의 6장과 7장을 어떤 식으로든 비정규직 문제에 영향력을 가지는 사람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앞서 거론하지 않은 미덕이 하나 더 있는데 필자의 성실함과 치밀함이다.

미주의 참고문헌을 보면 관련 판결문은 물론, 철학, 사회학, 보건학, 심리학, 데이터, 법철학, 매체 칼럼 등 방대한 자료들이 망라되어 있다.

본문으로 포함되었어도 좋을 글들이 빼곡하다. 판결문에 대한 언급을 보면 하급심에서 어렵사리 진일보한 판결을 해 놓은 걸 뒤집어버린 대법판결에 분노한 대목도 있고, 비정규직 관련 사안에서 진일보한 판결을 기록한 대목도 있는데, 양승태 코트와 이용훈 코트의 차이가 보이기도 해서 그것도 재미가 있었다. 참고문헌을 안 읽으면 가오갤에서 쿠키영상 안 보고 나오는 것과 같으니 꼭 읽기를 권한다. 나는 건조한 문장에서 발견하는 뜻밖의 인간애를 좋아한다.

그래서 비정규직 문제를 대하는 필자의 이런 말이 좋았다.

더불어 정책을 만들고 제도를 실행하는 사람들이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다면 참 좋겠다. “생존과 자아실현을 위해 필수적인 삶의 경로인 취업노동을 할 때 오로지 그 사업장의 사용자가 허락하는 범위에서만 기본권을 행사할 수 있다면, 그들은 사용자의 자의에 따라 기본권 행사가 제약되는 일종의 이등 시민이 되기 때문이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해결해야 할 정치의 영역, 사법부가 변화해야 할 영역을 좀 더 명료하게 구분해서 제시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에 5점 만점에 4.9점을 주었는데..

5점 줄 걸 그랬나 싶다. **그리고 마음에 남은 문장들. -한국사회에서는 비정규직이 가교가 아니라 함정이다.  -효율성의 유지는 부정의를 규제하지 않는다.  -노동자는 휴식과 배움이 필요한 존재다.  -간접 고용의 고유한 부문은 흡혈적 특성만을 갖는다. -불평등은 그 불평등으로 인해 가장 이익을 적게 보는 이에게도 이득이 되어야 정당화된다.  -이 ‘비용’은 회계적 비용이 아니라 구체적인 인간들이 겪는 구체적인 고통이다. ** 이 책 읽고 좋아하는 사람 제가 애정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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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mizibooks.tistory.com/133 [미지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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