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에서 엿보는 PC주의와 페미니즘의 해악

이선옥 승인 2022.07.26 14:04 의견 0
  OTT서비스로 세계 각국의 드라마를 동시에 접하게 되면서 현재 그 사회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을 보게 된다.

특히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의 최근 드라마 속 장면들은 PC주의가 얼마나 1세계의 문화에 잠식해 있는지 가늠하는 척도로 기능한다.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인 미국 드라마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에 보면, PC주의와 페미니즘이 대중들의 인식체계에 어떤 식으로 나쁜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 나온다.   넷플릭스 시리즈: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정치적 올바름을 강박적으로 요구하고 교정하려는 PC주의 운동이 사람들의 인식체계에 해악을 끼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모든 사안을 정치적인 문제로 만든다. 둘째, 모든 상황을 최대한 악의적으로 해석하고 극단적으로 표현한다.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는 잘나가던 변호사 미키 할러가 사고와 약물중독으로 고전하다 백만장자의 아내 살해 의혹 사건을 수임하면서 컴백하는 내용이다.

미키가 첫 번째 아내와 사이에 낳은 고교생 딸 헤일리는 학교 축구부의 골키퍼로 활동하는데 어느 날 경기 도중 동급생 친구를 가격하고 격렬한 몸싸움을 벌인다. 미키의 두 번째 아내이자 헤일리의 전 새엄마인 로나가 이를 수습한 후 헤일리와 대화를 나눈다.

로나는 헤일리의 감정적인 행동이 이혼한 부모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헤일리는 부모 때문에 방황한 게 아니었다.   헤일리: 트레버 엘리엇(아빠가 변호하는 부자) 때문에 싸웠어요 로나: 뭐? 헤일리: 학교 애들은 아빠가 괴물을 변호한다는 이유로 아빠도 괴물이래요.

저도 무시하려고 하는데 오늘 미샤가 그러는 거예요.
"네 아빠는 가부장제를 옹호하고 학대를 권장하고 있어." 그래서 두들겨 팼어요.

정의의 사도들은 말이 안 통해요.

우리 아빤 나쁜 사람이 아니지만 나쁜 사람을 변호하는 걸 보면 너무 괴롭고요.
로나: 누가 나쁜 사람인지는 누가 정하는 걸까? 나쁜 사람도 사람이야 그게 사회의 핵심이지.

법정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전부 누군가에게는 세상의 전부거든.

트레버 엘리엇이 네 친구들 눈에는 아내 죽인 부자로만 보이겠지.

하지만 아직 재판 첫날인데 이미 유죄라고 단정짓잖아. 
수많은 사람들이 누명을 쓰거나 과한 처벌을 받고 있어.

네 아빠는 무고한 사람이 죄인 취급 받지 않도록 한 명이라도 도우려는 거야.

그 과정에서 죄인 천 명을 변호하는 한이 있어도 말이지.
  친구의 PC주의적 조롱에 격분한 헤일리   나는 헤일리의 대사를 보면서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은 십대 여학생들의 언어구사가 얼마나 나쁜 방향으로 변했는지 알 수 있었는데, 이는 한국의 십대 페미니스트와 PC주의자들에게서도 동일하게 감지되는 현상이다.  

페미니즘의 해악: 무엇이든 정치적 문제로 만들고, 최대한 악의적으로 해석하기

학생들 사이에 다툼이 있을 때 학교라는 영역에서는 친구를 괴롭히는 건 나쁜 짓이라는 규범이 먼저 작동한다.

대체로 악당을 변호하는 아빠를 둔 친구를 괴롭힐 때 쓰는 표현은 “너네 아빠 악당을 변호한다면서?”라고 공공연히 떠들거나, “너네 아빠는 악당을 변호하기 때문에 똑같은 악당이야.”라거나, “악당을 변호하는 건 악당보다 더 나쁜 행동이야”와 같은 말들이었다. 그러나 PC주의와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은 십대 여학생은 이제 단순하게 나쁜 표현 대신 정치적 언어를 사용해 교묘한 비난을 가한다. “네 아빠는 가부장제를 옹호하고 학대를 권장하고 있어." 헤일리가 화난 것은 친구 미샤가 통상의 표현이 아닌 정치적인 문제로 만들어 자신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헤일리는 정의의 사도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푸념한다. 이 짧은 대사가 정확하게 PC주의자들의 행태와 대중들의 반응을 집약해서 보여준다. 친구를 괴롭히는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미샤는 그럴듯한 정치적 명분을 만든다.

십대 자녀일 뿐인 친구가 부모의 직업 영역의 행위에 어떠한 책임이 있겠는가.

자신도 그걸 안다.

그래서 통상의 표현 대신 ‘가부장제 옹호, 학대 권장’과 같은 정치적인 표현을 가져와 자신의 행위에 ‘정의’라는 정당성을 부여한다. 모든 사안을 정치적인 문제로 만들고, 모든 상황을 최대한 악의적으로 해석하며,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PC주의자의 전형이다. 이들에게 '아내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의뢰인을 변호하는 것이 가부장제 옹호와 어떤 관련이 있으며, 어떻게 학대를 권장하는 일이 되는가?' 라고 물으면 제대로 된 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범죄 혐의를 받는 피의자에 대한 변호는 모두 살인과 폭력, 사기 등을 권장하는 행위가 된다.

무논리의 주장이지만 페미니즘을 받아들이면 이러한 무논리가 가능해진다. 몇년 전 페미니스트 진영이 이석태 헌법재판관 임명을 비판한 일이 있다.

미투폭로와 함께 피소당한 시인을 대리한 변호사와 법무법인의 공동대표라는 이유였다.

이들에게는 미투사건 가해 지목자를 대리한 당사자가 아님에도(당사자여도 결격사유인 것은 아니지만) 반대 사유가 된다.

페미니스트의 반대사유를 보면 헤일리를 괴롭힌 미샤가 어떻게 저런 표현을 사용하게 되는지 경로를 알 수 있다.

페미니즘의  사고체계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똑같기 때문이다.   출처: 여성신문 출처: 여성신문   “습관적인 성추행 가해혐의자 고은 시인의 변호를 법무법인 덕수의 김형태 변호사 등이 맡는 현실에서, 덕수의 다른 공동대표인 이석태 변호사가 헌법재판관이 된다 하더라도, 여성인권의 까마득한 현실은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민변 전 회장 등 인권변호사 활동을 근거로 문재인 정부에서 헌법재판관으로 내정되는 이석태변호사의 법무법인이, 습관적인 성추행 가해혐의자 고은 시인의 변호를 맡고 있는 현실이 허탈하고 통탄스럽다.

여성에게 문재인 정부는 무엇인가? 여성에게 국가는 무엇인가? 헌법재판관 내정자 이석태 변호사에게 여성 인권은 무엇인가?” 
  이석태 재판관과 법무법인이 맡은 사건 중에는 많은 형사사건의 피고인이 있었을 것이지만 이들에게는 관심사가 아니다.

오직 미투 가해지목자를 대리한 변호사를 동료로 둔 변호사가 헌법재판관에 지명되었다는 사실 하나가 이들에게는 '여성에게 문재인 정부는 무엇인가? 여성에게 국가는 무엇인가? 이석태 내정자에게 여성 인권은 무엇인가?'와 같은 거대한 질문을 던져야 하는 일이 된다. 모든 사안을 정치적인 문제로 만들고, 모든 상황을 최대한 악의적으로 해석하며,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PC주의와 페미니즘의 전형적인 사고방식이다.

성범죄 사안에서 남성이 무죄를 받으면 '가부장제를 옹호하는 남성권력 사법부'라 비난하는 페미니스트들의 구호처럼, 이 이념은 '약자옹호'라는 명분으로 이러한 무논리를 가린다.  

동료시민에 대한 억압에 최적화된 도구

페미니즘과 PC주의는 타인을 억압하고 괴롭히면서, 자신의 정의감을 뽐내고 싶은 비뚤어진 마음을 그럴듯해 보이도록 치장하는 데에 최적화된 도구이다. 이 이념과 운동의 해악은 헤일리의 사례처럼 친구를 놀리는 것은 나쁘다는 규범 자체를 무력화시킨다는 점이다. 너네 아빠 괴물 변호하지? 라고 놀리는 것에는 '권장되는 행동인가 금지되는 행동인가' 하는 공동체의 규범이 작동되고, 이에 따라 괴롭힌 학생의 잘못이 된다.

이 상황에서 작동되었어야 하는 규범은 ‘친구를 괴롭히면 안 된다’는 것 하나다. 그러나 ‘너네 아빠는 가부장제를 옹호하고 학대를 권장하고 있기 때문에 나빠’라고 말하면 친구 아빠의 행위가 정의인가 불의인가 하는 정치적 판단의 전선이 형성되고, 여기에 이념적 동지들이 가세해 미샤의 비판이 타당한 비판인가 아닌가의 문제로 오도된다. PC주의자들이 목적하는 바가 바로 이러한 오도이다.

하등 정치적이지 않은 개인적인 사안, 공동체의 규범 준수, 배려심 없음, 사려깊지 못함, 무례함과 같은 영역의 문제를 정의, 불의, 정치, 제도, 가부장제 옹호, 학대의 권장과 같은 심각한 영역의 문제로 만들어 자신들이 선점한 프레임에 가둔다. 이러한 행동으로 얻어지는 결과는 정의로운 자신에 대한 과시, 깨어있는 시민으로서 타인을 계몽했다는 선민의식, 인간의 자유의지를 자기 마음대로 통제하려는 욕망의 충족과 같은 것들이다. PC주의자들의 행위가 갈등을 유발하고 분쟁사례가 쌓이면서 대중의 분노도 폭발한다.

헤일리가 미샤를 ‘정의의 사도’라 비아냥댄 것은 기껏해야 친구나 괴롭히는 ‘불의’한 존재인 주제에 정의를 독점하고 잘난체 하는 데에 대한 반발과 분노 때문이었다.

이처럼 PC주의의 본질적 속성은 대중과 불화할 수밖에 없다. 요즘 1세계의 드라마를 보면 PC주의와 페미니즘에 충실한 대사와 캐릭터, 상황설정들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현재 창작자와 제작자가 어떠한 고민에 빠져 있는지가 감지된다.

PC주의와 페미니즘 요소를 포함하면서도 이에 대한 비아냥이나 진지한 반론을 집어넣는 방식으로 완전한 굴복을 거부하거나, PC주의와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 자체가 콘텐츠인 작품도 속속 제작된다.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빌버, 리키 저베이스, 데이브 샤펠 등의 스탠드업 코미디쇼 시리즈는 페미니즘과 PC주의에 대한 ‘매운’ 조롱이 주된 내용이다.

한국보다 앞서 PC주의와 페미니즘이 침투한 미국의 현재를 보면 이제 반격이 시작된 듯도 하다.

열렬히 호응하는 수만 명의 대중이 모두 혐오주의자일 리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대중적 피로도가 광범위하게 쌓여 있었다는 방증이 아닐까 짐작한다.   넷플릭스의 데이브 샤펠 쇼 넷플릭스의 데이브 샤펠 쇼  

PC주의와 페미니즘은 자유를 향한 여정에 함께 할 수 없는 이념

우리의 십대들이 부디 페미니즘과 PC주의라는 해악인 이념의 영향을 받아 ‘너네 아빠는 가부장제를 옹호하고 폭력을 권장해’와 같은 표현에 잠식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규범을 제대로 가르치고, 해악이 되는 이념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로나와 같은 어른의 역할이 중요하다.

또 다른 미국 드라마인 수사물 FBI에서도 우리가 살기 위해 혐오주의자들은 죽어야 마땅하다는 신념에 빠진 좌파 여학생에게 요원 매기가 단호하게 말한다. “아니, 틀렸어.

우리와 저들이 함께 살아.

그게 이 나라의 핵심가치야” (링크: 미드 FBI에서 읽는 정치적 올바름 운동의 현재)
채널 나우 방영작 FBI   미국에서도 지난 수 년 동안 이른바 ‘캔슬 컬처(cancel culture)’가 위세를 떨쳤다.

소셜 저스티스 워리어(Social Justice Warrior:SJW)들은 정치적 올바름을 강요하고, 온갖 영역의 표현에 대한 검열과, 개인에 대한 사이버 불링으로 사적 제재를 반복하는 등 해악을 끼쳐왔다.

현재도 이러한 행위는 계속되는 중이지만 이에 대한 대중들의 비판과 반감 또한 만만치 않다. 이들을 조롱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의 대사는 때로 철학자나 사회학자보다 우월한 통찰을 담고 있어 감탄한다.

아래 로나의 대사 또한 PC주의와 페미니즘에 경도된 소셜 저스티스 워리어들에게 들려주는 어른답고 정의로운 조언이다.

이런 콘텐츠들을 보면 이것이 대중문화 강국 미국의 저력인가 싶기도 하다. “누가 나쁜 사람인지는 누가 정하는 걸까? 나쁜 사람도 사람이야 그게 사회의 핵심이지.

법정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전부 누군가에게는 세상의 전부거든.

트레버 엘리엇이 네 친구들 눈에는 아내 죽인 부자로만 보이겠지.

하지만 아직 재판 첫날인데 이미 유죄라고 단정짓잖아.

수많은 사람들이 누명을 쓰거나 과한 처벌을 받고 있어.

네 아빠는 무고한 사람이 죄인 취급 받지 않도록 한 명이라도 도우려는 거야.

그 과정에서 죄인 천 명을 변호하는 한이 있어도 말이지.”
  페미니즘, PC주의 운동, 정체성 정치는 오늘날 표현에 대한 검열, 성별 갈등, 프라이버시 침해와 같은 문제적인 사회현상의 주요한 원인이자 결과이다.

이 이념과 운동이 끼치는 해악과 이로 인해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은 간단치 않다.

한국사회도 미국과 같은 길을 가고 있다.

그래서 이 이념과 운동의 해악을 이해하는 일이 우선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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