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문화전쟁: 약좌(弱座)의 게임
오늘날 우리사회에 일고 있는 문화적 변화와 남녀갈등의 기저에는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와 PC주의(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 혹은 정치적 교정주의)가 자리한다.
정체성 정치란 성별, 젠더, 종교, 장애, 민족, 인종, 성적지향, 문화 등 공유되는 집단 정체성을 기반으로 배타적인 정치 동맹을 추구하는 정치 운동이자 사상을 말한다.
PC주의는 말의 표현이나 용어의 사용에서 인종·민족·언어·종교·성차별 등의 편견이 포함되지 않도록 하자는 운동으로 정체성 정치가 구현되는 한 방식이다. 정체성 정치는 노동자 대 자본가, 국가권력 대 시민, 제국 대 속국과 같은 전통적인 대립 관계 대신 정체성 집단 사이의 권력관계에 집중한다.
이러한 탐색이 구 대립질서가 놓친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 여긴다.
정체성 정치의 대표집단은 여성이다. 부자인 여성은 빈민 남성보다 사회경제적으로 우월하지만, 하층계급에 속한 남성일지라도 그에게 강간의 공포를 느끼는 상류층 여성은 약자다.
페미니스트인 힐러리 클린턴-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세계적 유명인인-은 자신이 가진 수많은 억압자 점수는 카운트하지 않고, 여성이라는 피억압자 점수는 부풀리는 선거운동을 벌였다.
강대국 출신, 백인, 중산층, 명문대, 법률가, 상원의원, 퍼스트 레이디, 국무장관, 대통령 후보까지 강자집단의 모든 요소를 갖추었지만, 여성이라는 단 한가지 요소를 내세워 스스로를 약자의 지위에 포진시켰다.
그녀는 군사작전으로 한 국가의 남성들을 일시에 몰살시키는 권력을 지녔음에도 ‘억압자들이 만든 유리천장을 깨는 데 실패한 여성’으로 자신을 정체화한다.
여성은 언제나 구조적 피해자라는 논리를 내면화한 페미니즘 운동이 정체성 정치와 정치적 올바름을 주도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정체성 정치가 현실에서 구현되는 방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약자 그룹에 권력을 부여하는 정치투쟁이고, 다른 하나는 약자에 대해 어떠한 형태로든 불쾌감, 공포심, 위협, 불안을 조성하는 말(표현)을 금지하는 문화운동이다.
정체성 정치 집단 중 가장 세력이 큰 여성운동이 이를 주도하므로 성차별과 여성혐오 표현물이 제1의 타깃이 된다. 남성지배문화 속에서 공기처럼 자리잡은 성차별적 표현을 제거하는 일은 중요한 과업이다.
'여성혐오', '혐오표현', '성인지감수성'과 같은 개념이 문화전쟁의 상징이 됐다. 정치권력의 배분은 특정한 영역에서 소수만이 독점하므로 대중의 일상적 이해관계와 얽히지 않지만, PC주의 운동은 존재하는 모든 표현, 즉 생활문화 전반이 개조대상이 되므로 이를 향유하는 남성대중에게 직접 영향을 끼치게 된다.
오늘날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데에 대한 저항의 전선이 국가 대 시민사회가 아닌 페미니스트와 창작자, 페미니스트와 남성 소비대중 사이에 그어지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 전선이 상시적으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전장이 온라인 커뮤니티다. 2021년 현재 청년 남성과 여성들은 문화전쟁 중이다. 특히 성(性)적 영역은 그 가운데에서도 첨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