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과 [미디어스]의 손병관 보도: 취재도, 반론보장도 없는 받아쓰기

이선옥 승인 2021.03.26 17:51 의견 0

지금 피해자 보호를 위해 비공개 처리된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문은 어디서 어떻게 유출된지 모른채 모든 언론이 다 보도하고 있다.

그것도 적시된 사실 중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대목을 발췌해 기사 제목으로 내보낸다.

김예리 기자와 김혜인 기자가 피해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고려했다면, 페미니즘 진영에서 2차 가해라 주장할만한 문제적 기사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언론인권센터>와 <미디어오늘>, <미디어스>는 조선일보가 상대진영 비난을 위해 피해사실을 도구로 사용하는 보도태도는 용인하고, 한 기자가 수십명을 취재해 써낸 책에 대해서는 "자신이 믿고 있는 내용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간단히 매도하고 폄하한다.

기사의 기본인 반론권 보장에도 관심이 없다.

  서울시장 성비위 사안에 대해 관련자들을 취재한 손병관 기자의 취재기 <비극의 탄생>이 매체비평지의 '인용'비난을 받고 있다. <미디어오늘>의 김예리 기자와 <미디어스> 김혜인 기자는 3월 25일 발표된 언론인권센터(이하 센터)의 손병관 기자 비난성명을 보도했다.

두 기자의 견해를 드러내지 않고 센터의 성명서를 단순 보도한 것으로 보기에는 기사 내용의 대부분이 성명서의 내용을 '복붙'한 것이라 사실상 손병관과 그의 책을 비난하는 것이다. 제목부터 똑같다.
  • 미디어오늘: 언론인권센터 “‘비극의 탄생’, 취재윤리 위반한 2차가해 집약체” “‘기자’ 직업에 기대 자기 관찰이 전부라 주장…인권침해이자 폭력”
  • 미디어스: “‘비극의 탄생’은 2차 피해의 집약체”언론인권센터 논평 "동의 없는 증언으로 자신이 믿는 내용 합리화"…인권위 판단 부정하는 기자의 인권 침해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들이 부각하고 싶은 것은 손병관 기자의 책이 '2차 가해 집약체'라는 주장이다.

견해없이 견해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한 기자의 취재와 그 결과물에 대해 언론인권센터라는 단체가 비난 성명을 낸 사실에서 이 책이 일으킨 파장을 알 수 있다.

<비극의 탄생>은 그동안 우리 사회, 특히 언론이 성역으로 여겼던 미투(성폭력 폭로 문제)에 대해 검증을 시도한 최초의 책으로서 의미가 있다. 성역은 권력자들이 저지른 문제라서 성역이 되는 게 아니라 아무도 해당 문제에 대해 말할 수 없고, 문제제기 할 수 없고, 닥치고 믿으라고 강요 당하며, 의문이 있어도 침묵을 강제 당할 때, 그게 바로 성역이다.

미투가 그렇다.

그동안 미투는 검증의 영역이 아닌 믿음의 대상이었다.

피해를 폭로하는 여성에 대해 사실관계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은 가해행위이며, 가해자로 지목된 자의 말을 듣는 것 또한 가해행위였다. 취재에 기반해 사실을 밝히고, 사실에 기반해 논평을 하는 저널리즘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가 미투 앞에서는 멈췄다.

이런 지형에서 업계 전반에 자리잡은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한 기자가 수십명의 취재원을 만나 사실의 조각들을 꿰어맞춰 독자에게 사건의 실체에 대한 판단기준을 제시한 책은 처음이다. 센터의 성명서 수준은 실망스럽다.

정제되지 않은 감정적인 단어의 사용 뿐 아니라, 언론단체라는 곳에서 기자윤리나 저널리즘의 의의에 대해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대목 또한 눈에 띈다.

이 성명서를 쓴 사람의 언론에 대한 인식 수준과, 그것이 조직 내에서 최종 수용, 외부 발표 되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해당 단체의 수준을 말해준다.     취재와 반론권 보장이 없는 <미디어오늘>과 <미디어스>의 기사 <미디어오늘>과 <미디어스>의 문제로 돌아가보자. 김예리 기자와 김혜인 기자는 성명서를 복붙 수준으로 옮겨 담았다.

한 개인이자 기자인 손병관에 대해 강도높은 비난을 하는 내용을 기사로 다룬다면 동료기자인 손병관의 입장을 들어봄이 마땅하다.

센터의 이례적인 성명서에 대해 기자로서 어떤 생각인지, 대응을 할 계획인지 묻는 게 순서다.

반론권 보장의 차원에서도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두 기자는 전화 한 통화만 해도 들을 수 있는 손병관 기자의 반론과 입장을 싣지 않았다.

미디어오늘의 김예리 기자는 경향신문의 강진구 기자가 미투에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를 썼을 때에도 강진구 기자를 일방 비난하는 기사를 쓰면서 반론을 싣지 않아 문제가 된 이력이 있다. 비단 김예리, 김혜인 기자의 문제만이 아니다.

미투에 대한 기자들의 보도태도는 대부분 비슷하다.

'가해자'의 목소리를 싣는 것은 2차 가해에 해당하니 피해자 보호를 위해 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취재윤리라 포장한다. 피해는 상황이지 피해자라는 정체성을 선점했다고 해서 고정되는 게 아니다.

미투는 다른 모든 사안과 마찬가지로 믿음이 아닌 검증의 대상이며, 검증 과정에서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취재하면 될 일이다. 센터의 성명서와 서울시장 고소인 측에서는 인권위원회의 성희롱 결정문을 근거로 사실관계를 고정했다.

그러면서 "인권위의 판단을 부정하는 기자의 인권침해" 라고 비난한다.

어떠한 사실이 국가기관의 권위에 의해서만 고정된다면 기자라는 직종과 취재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인권위원회의 결정에도 의문과 비판점이 있으면 얼마든지 취해하고 보도할 수 있는 것이 언론인이 가진 권리이자 의무이다.

세상에 선하게만 포장됐던 기관들의 이면을 취재해 폭로하는 기사가 한둘이던가. 인권위 또한 마찬가지다.

인권위원장은 이 사안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기 이전부터 유죄를 단정하는 편향을 드러냈다.

조사 대상들이 위원장의 예단과 편향을 비난하며 조사를 거부한 사실도 있다.

조사의 대상이 된 당사자들이나, 주변인, 기자, 국민 누구라도 인권위의 결정에 대해 비판할 수 있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인권위의 결정문은 성역이 아니다.   정작 가해행위를 하고 있는 조선과 동아 등의 보도에는 침묵 손병관 기자의 책이 "2차 가해의 집약체"라며 따옴표 안에 숨은 미디어오늘과 미디어스는 정작 인권위 결정문을 인용하며 저속하고 선정적인 단어를 남발하는 조선, 동아일보 등의 기사에는 관심이 없다. 3월 17일 고소인의 기자회견 이후, 18일부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은 일제히 인권위 결정문 속 내용을 인용해 옮기기에 민망한 제목으로 기사들을 내보냈다.

성범죄 관련한 사안에서 보도준칙 중 하나는 피해자가 피해상황을 떠올리거나, 대중들에게 선정적으로 소비되지 않도록 피해상황을 상세하게 묘사하지 않는 것이다. 거대 일간지들이 피해사실을 인권위라는 기관의 발표해 기대 가장 선정적인 대목만 발췌해 보도하는 것에 대해, 언론인권센터와 두 매체의 2차가해 감수성은 작동되지 않는다.

고소인측도 침묵한다.   피해자 보호를 위해 비공개처리한 인권위원회의 결정문을 매체마다 입수해 보도하는데도 인권위원회는 어떻게 유출됐는지에 대해 밝히지 않는다.

어떤 매체도 이를 문제삼지 않기 때문이다.

미디어오늘과 미디어스를 포함한 피해자보호의 원칙을 중요하게 여기는 진보적 매체들은 인권위원회 결정문이 유출된 사실에 대해 문제의식 자체가 없다.

왜? '가해자' 박원순을 비난하는 기사이기 때문이다. 서울시장 사건 초기, 고소인의 고소장이라는 출처불명의 문서가 돌고, 고소사실이 유출되었을 때 고소인측 지원단체는 강도높게 비난하며 수사까지 의뢰했다. 지금 피해자 보호를 위해 비공개 처리된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문은 어디서 어떻게 유출된지 모른채 모든 언론이 다 보도하고 있다.

그것도 적시된 사실 중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대목을 발췌해 기사 제목으로 내보낸다.

김예리 기자와 김혜인 기자가 피해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고려했다면, 페미니즘 진영에서 2차 가해라 주장할만한 문제적 기사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이들에게 더 중요한 건 피해자의 보호가 아니라 가해자의 처단이다.

미투를 검증이 아닌 믿음의 영역으로 여긴 그릇된 전제가 오늘날 이런 반인권적 행태를 인권이라 여기는 기이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언론인권센터와 미디어오늘, 미디어스는 조선일보가 상대진영 비난을 위해 피해사실을 도구로 사용하는 보도태도는 용인하고, 한 기자가 수십명을 취재해 써낸 책에 대해서는 "자신이 믿고 있는 내용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간단히 매도하고 폄하하고 있다.

기사의 기본인 반론권 보장에도 관심이 없다.     지난 5년 미투라는 광풍이 비극의 탄생을 만들어낸 데에는 이런 기자들의 보도태도가 큰 역할을 했다.

언론인권센터는 "기자의 책무는 취재윤리와 인권보호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

그러나 기자의 책무는 그것만이 아니다.

기자는 함부로 믿지 않는다.

그리고 취재로 말한다. 취재 없이 폭로자의 말만 받아쓰기 하는 미투보도는 수년 간 많은 비극을 탄생시켰고, 미디어오늘과 미디어스 등 언론사 기자들의 위와 같은 행태야말로 현재진행형인 비극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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