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마드 비판 기사들을 예로 언론이 유독 여성의 행위에만 가혹하다는 미디어오늘의 분석, 사실일까?
여성편향으로 기울어진 공론장을 답습한 비평
7월 15일 미디어비평전문지 ‘미디어오늘’은 아래 제목의 비평 기사를 실었다.
워마드 ‘남혐’ 논란이 던지는 질문 3가지
[비평] 핵심은 ‘도 넘은 남혐’일까, ‘남혐’이 ‘도 넘었다’고 쓰는 언론 보도일까
우선 이 기사는 제목과 달리 질문 3가지가 무엇인지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핵심 질문이 “‘도 넘은 남혐’일까, ‘남혐’이 ‘도 넘었다’고 쓰는 언론 보도일까”라고 한다면 나는 ‘도 넘은 남혐’이라고 답하겠다.
워마드의 남혐, 종교모독, 패륜 행위들이 도를 넘지 않았다면 애초에 보도가 되지 않을 사안들이었기 때문이다.
기사는 워마드의 성체 훼손 사건 보도를 근거로 “언론이 개인 혹은 집단의 행동을 판단할 때, 유독 여성에게 더 가혹하다’는 의혹을 입증했다.”고 쓰고 있다.
또한 “워마드의 극단성과 ‘남성혐오’에만 현미경을 대는 보도는 언론이 여성에게 불리하게 기울어진 공론장을 답습하고, 강화한다는 반증이다.”라고도 썼다.
이 비평기사야말로 젠더문제에서 진보매체들이 그간 얼마나 여성편향으로 기울어진 공론장을 답습하고 강화해왔는지 보여준다.
기사 속에서 ‘여성에게 불리하게 기울어진 공론장’이라 규정한 근거는 워마드 게시판에 성체 훼손글이 올라온 후 나흘 동안 해당 사안에 대한 일간신문의 보도가 27건이며, 기사의 내용도 일부 여성의 ‘남성 혐오’와 극단적 행동이 도를 넘었다고 해석하거나, 충고하는 글이라는 사실이다.
7일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역대 최대 인파를 모은 직후 나온 이런 보도들 때문에 사안의 본질이 부각되기 보다는 여성의 일탈행위에 현미경이 들이대어졌다는 것이다.
사실관계를 보자.
7일 혜화역 시위에 대한 보도는 '혜화역 시위, 혜화역 집회'로만 검색해도 수백 건이다.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 집회의 부정적인 면보다는 해당 집회의 규모, 집회의 주장 내용들을 보도하면서 여가부 장관이 참석하고 행안부 장관이 코멘트를 할 정도로 정부가 관심을 보이는 사실도 보도하고 있다.
시위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은 찾기 어렵다.
7월7일 혜화역 시위를 보도한 기사들
문제는 다른 데에서 터졌다.
7일 열린 3차 집회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홍대몰카사건이 ‘편파수사가 아니라’고 한 발언 때문에 정부에 대한 비판이 도드라졌다.
“문재인 재기(남성연대 대표 고 성재기씨의 자살을 빗대어 조롱하는 말로 자살하라는 의미의 남성모욕 발언)해”가 집회의 공식구호로 등장했다.
진보매체들은 이를 엄호하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재기해 구호 논란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성체 훼손 사건이 또 일어났다.
27건의 기사는 집회 직후 사건이 연속된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기사의 주장처럼 보도 시점에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같은 사안을 두고 대중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소셜 미디어들과 진보매체의 온도차이는 크다.
혜화역 시위에 등장한 홍대 몰카 피해남성에 대한 2차가해 그림
지난 1,2차 시위에서는 홍대몰카사건 피해남성의 나체에다 ‘누가 쉬는 시간에 이러고 있냐’고 쓴 그림이 등장했다.
몰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무좆유죄, 유좆무죄’, ‘자이루’와 같은 남성비하와 저속한 구호, 경찰과 남성에 대한 혐오발언이 난무했지만 진보매체들은 이런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다.
“뽀샵”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큼 집회의 긍정성만을 강조하고 여성주의자와 논객들의 말을 빌어 이들 행위를 격상시켜 지지하고 나섰다.
혐오발언과 행위는 가려주었다.
언론이 여성의 일탈행위에 대해 현미경을 들이댔다는 기자의 분석은 우선 틀렸다.
그렇게 사실을 가려주면서까지 지지하고 엄호해왔지만 성체 훼손에, 흉기인증 사진들까지 등장하니 더 이상 도를 넘는 행위들을 덮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게 정확한 진단이다.
같은 사안을 두고 대중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소셜 미디어들과 진보매체의 온도차이는 이처럼 크다.
기사는 묻는다.
“워마드 게시글이 4일 간 연이어 보도할 만큼 무게를 지녔을까?”
지녔다.
성체 훼손이라는 이전에 없던 행위가 일어났고, 수위가 도를 넘었으며, 가톨릭이라는 영향력 큰 종교집단을 정면으로 건드렸다.
이것이 보도가치가 없는 일일까? 한국사회에 여성의 혐오행위가 이 정도로 강도 높은 경우는 없었다.
가족이나 제3자에 대한 무차별 린치(잠든 남성에 대한 식칼위협 인증 사진, 버스 안 흉기인증 사진 등)를 대중에게 인증하는 행위가 전면에 등장한 것도 처음이다.
이는 병리적인 현상으로도 충분히 진단할 수 있는 심각한 무게의 사회 문제다.
일베의 잘못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게 워마드의 잘못에 면죄부를 주지는 않는다.
일베가 그럴 때는 왜 가만 있었느냐는 비판 또한 사실이 아니다.
해당 기사는 워마드의 행위에 대한 대항논리로 일베와 비교를 거론한다.
그간 일베가 해 온 마리아상이나 예수 십자가상에 대한 성적 모욕 게시물들에 대해 비판이 없다가, 이를 ‘미러링’한 워마드의 행위에만 비판이 인다는 것이다.
‘미러링’ 옹호 논리는 메갈리아, 워마드의 등장 이후 진보매체에서 꾸준히 해왔던 일이다.
사실관계를 보자.
아이디 ‘홍본좌무죄’(여기서 홍본좌는 홍대몰카사건의 범인인 가해여성을 가리킨다.
워마드는 몰카범이 여자라서 유죄를 받았다는 입장을 공유한다) 이름으로 워마드 게시판에 올라온 성체훼손 글에 보면 어떤 언론도 모자이크 없이는 올릴 수 없는 혐오문구가 등장한다.
이 웜련(워마드 유저들이 자신을 가리키는 말)은 성체에 “조팔.
개독들 버튼 제대로 눌렀노.
...
강제로 한남새끼가 웅앵거리는 소리 들어주고 성당에서 이런 걸 받아왔노.
예수 좆팔새끼.
느그애비 좆팔 강간충” 이란 말을 쓴 후 이를 불태웠다고 인증했다.
본디 미러링이란 혐오의 가해자에게 해당 행위를 똑같이 돌려줘 자신의 혐오행위를 깨닫게 하는 목표로 만든 전략이다.
메갈리안과 워마드에서는 그런 이유로 여성들의 남성혐오발언과 행위를 미러링이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주장했고 진보진영은 이를 옹호해왔다.
해당 행위가 정당한 미러링이려면 그 대상은 혐오를 한 일베를 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워마드는 일베가 아닌 가톨릭을 향해 도발을 했다.
원본이 없는 행위에 무슨 미러링 타령인가.
혐오를 난사하고 범죄를 모방하는 행위에 대해 진보언론과 필자들이 사후 옹호와 정당화 논리를 부여해주는 패턴은 메갈리아-워마드 탄생 이후 계속되어 왔다.
젠더이슈마다 진보언론의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이 편향성에 대한 대중들의 분노와 비판이 계속된다.
그러나 진보매체들은 이를 여성혐오자들의 준동 정도로 취급한다.
지금 워마드의 행위는 일베의 미러링이 아니라 모방범죄다.
일베의 잘못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게 워마드의 잘못에 면죄부를 주지는 않는다.
일베가 그럴 때는 왜 가만 있었느냐는 비판 또한 사실이 아니다.
일베의 온갖 일탈행위와 범죄행위에 대해 그간 언론들이 어떤 보도를 해왔는지, 그래서 오늘날 일베가 사회적으로 어떤 취급을 받는지 기사를 조금만 검색해 봐도 알 수 있다.
언론이 한국사회의 일반적 약자혐오는 문제시하지 않았다?
해당 기사가 다음으로 문제 삼은 내용은 ‘언론이 한국사회의 일반적 약자혐오는 문제시하지 않다가 워마드가 강자인 대통령과 예수 등을 혐오하니 문제 삼는다는 것이다.
“언론이 한국사회의 일반적 약자혐오에는 문제시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등장하는 언론은 어떤 언론인가.
당장 미디어오늘의 과거 기사만 검색해 봐도 ’여성혐오‘현상을 비판하는 기사가 부지기수다. 오늘자 미디어오늘의 메인화면 제목들이다.
약자와 소수자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지난 2~3년간 우리 사회의 최대 이슈가 페미니즘과 여성혐오였을 정도로 언론들은 약자에 대한 혐오 이슈를 단순보도, 기획, 특집, 심층, 기고 등 모든 방식으로 쏟아냈다.
최근에만 보더라도 난민과 성소수자 혐오에 대한 비판과 우려기사들이 많다.
그간 남성들의 여성혐오 행위를 비판한 기사와, 여성들의 남성혐오 행위를 비판한 기사의 총량만 비교해봐도 위 주장이 틀렸다는 걸 알 수 있다.
목숨의 위협을 피해 도망쳐 온 난민남성과 그에게 강간공포를 느끼는 한국여성, 과연 누가 더 약자인가? 피해를 상황으로 규정하거나, 보편적 규범과 인권의 관점으로 천착하기보다, 자신들이 규정한 강자/약자의 대립구도 속에 욱여넣다가 맞닥뜨린 혼란이다.
“‘혐오’라는 용어를 분별없이 사용하는 보도도 들여다봐야 한다.” “과격한 표현 하나 하나에 주목하다 보면 언론이 힘을 실어 보도할 본질이 흐려진다.”는 주장에는 동의한다.
다만 그 주체를 한 번 바꿔보자.
그간 진보매체들은 ‘혐오’라는 용어를 분별없이 사용해 여혐을 자의적으로 규정하고, 일부의 과격한 표현과 일탈행위를 선택적으로 부각해 보도해왔다.
오늘날 성별갈등과 혐오현상에 진보언론들의 책임은 누구보다 크다.
7월 12일자 미디어오늘의
“워마드 ‘남성 혐오’ 논란에 소극적인 진보언론.
[비평] 혜화역 시위 ‘재기해’와 워마드 ‘성체 훼손’ 논란에서 본 진보언론”이라는 기사는 성체훼손 사건을 예로 들어 아래와 같이 지적했다.
“보수·중도 성향 신문사는 이처럼 워마드를 강도 높게 비판한 데 반해 진보 언론은 해당 이슈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12일자 지면에서 이 소식을 다루지 않았다.
반면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이 사안을 지면과 온라인에서 다루지 않았다.
남성 혐오 표현에 대한 사회적 비판 여론을 기사에 담아내지 못하는 모습이다.
여성주의 운동을 대변해온 진보언론의 고민과 함께 ‘운신의 폭’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것이 정확한 진단이다.
진보매체들은 그간 약자라 옹호해왔던 여성들이 난민추방 청와대 청원을 주도하고,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가톨릭과 대통령, 일반남성에 대한 무차별 혐오를 하니 난감해졌다.
여성이라는 정체성 하나로 ‘약자’를 규정해온 탓에, 난민 남성에게 강간당하는 여성이 더 약자라는 주장에 습관적으로 고수해온 약자옹호 전선에 혼란이 왔다.
목숨의 위협을 피해 도망쳐 온 난민남성과 그에게 강간공포를 느끼는 한국여성, 과연 누가 더 약자인가? 피해를 상황으로 규정하거나, 보편적 규범과 인권의 관점으로 문제에 천착하기보다 자신들이 규정한 강자/약자의 대립구도 속에 욱여넣다가 맞닥뜨린 혼란이다.
혐오 개념에 대한 일방적인 규정, 이를 기반으로 여성혐오에 대해 ‘도 넘은 혐오’를 부각해 온 언론은 4일 동안 27개 기사를 보도한 일간지들이 아니다.
이 기사는 마지막 대목에서 홍성수 교수의 페이스북 발언을 길게 인용해 혐오의 정의를 보도하고 있다.
그 정의에 따르면 성체 훼손은 혐오가 아니고 종교에 대한 모독일 뿐인데 이를 엄밀하게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여성인권 외침’과 함께 자라는 ‘남성 혐오’”라는 제목이 양자를 동일시할 위험이 있다며 비판한다.
여성인권과 남성 혐오가 사회문제로 동일시되면 안 된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남성을 혐오하는 일은 여성의 인권보다 사소한 문제인가?
똑같이 동료시민을 혐오하는 행위를 두고 어떤 것은 정당하고 어떤 것은 사소하게 취급하거나 무시해온 진보매체의 주장이 지금의 성별갈등을 증폭시켜왔다.
바로 이 기사와 같은 주장들이다.
혐오 개념에 대한 일방적인 규정, 이를 기반으로 여성혐오에 대해 ‘도 넘은 혐오’를 부각해 온 언론은 4일 동안 27개 기사를 보도한 일간지들이 아니다.
미디어오늘의 위 비평기사는 분석적이고 객관적인 비평보다는 단정적인 주장이 도드라진다.
근거로 든 사실관계도 부실하거나 틀렸고 편향적이다.
오히려 앞서 보도한 기사 “남성 혐오 표현에 대한 사회적 비판 여론을 기사에 담아내지 못하는 모습”의 예로 기능한다.
위 비평기사의 주어를 진보매체로 바꾸고 분석과 비판의 날을 들이대보기를 바란다.
그래도 현실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면 보도의 기본인 불편부당함에 이상신호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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