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부패는 왜 더 해악인가?(1): 석진환과 신학림의 사례를 들어
이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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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1 19:45 | 최종 수정 2023.12.17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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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왜 부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을까? 지난 1월, 진보진영의 논객인 작가가 한겨레 석진환 기자의 9억 수수 사례를 언급하며 PC주의자들과 부패에 대해 이야기했다.
PC주의자들이 부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였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출처: 박가분작가 페이스북 최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이자 진보진영의 기자였던 신학림씨는 부동산비리 혐의자인 김만배에게 자신의 저서 3권을 1억6천5백만원에 팔았는데 이것이 문제가 되자 내 책은 그만한 값어치가 있으므로 정당하다고 강변했다.
석진환과 신학림 모두 진보 언론인들이다.
사회와 동종업계의 부정부패에 대해 비판해오던 이들은 정작 자신이 부정부패 혐의자가 되자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애초부터 부패를 대하는 진보의 인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진보진영의 인사가 부패사안에 연루될 때마다 나오는 항변이 '왜 더 큰 부패집단인 보수보다 우리에게 가혹하느냐'는 것이다.
더 큰 부패에는 관대하면서 진보에게만 엄격한 대중의 기준을 부당하게 여기고 억울해한다.
억울해하기만 할 뿐 이유를 알아내 시정하려는 노력이나 반성은 없다.
사람들은 탐욕보다 위선을 더 싫어한다.
당연한 일이다.
기득권을 가졌던 보수인사들의 부패행위에는 익숙함이 있고 그래서 애초부터 높은 도덕성에 대한 기대가 없다.
그러나 그들의 탐욕을 높은 도덕적 기준을 들어 비판하면서 권력을 차지한 진보진영은 똑같은 행위를 하면서도 인정을 하지 않으니 더 분노할 수밖에 없다.
다른 면도 있다.
사람들이 위선에 더 분노하는 것은 애초 탐욕이 옳아서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와 관련돼있다.
도덕적으로 사는 게 더 우월하고 옳다는 당위는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디 그러한가.
부패한 재벌을 욕하면서도 그 화려한 삶을 욕망하는 것이 인간이다.
부자로 살고 싶고, 내 집값이 올랐으면 좋겠고, 그러면서도 세금은 덜 내고 싶고, 나의 이익을 위해 적당히 거짓말도 하고, 돈 앞에 약해지고, 매력적인 상대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것을 어쩌지 못하는...
이것이 평범한 인간들의 모습이다.
보수의 정책은 그러한 세속적 욕망을 긍정하는 면이 있다.
반면 그와 같은 인간의 단면들을 도덕적으로 지탄하며 맹렬히 비난해서 권력을 차지한 진영이 진보다.
그런데 집권을 하더니만 진보 또한 보수와 똑같은 행동을 하는게 아닌가.
대중의 분노지점은 여기다.
보수의 탈세는 잘못이라고 규정하면서도 부에 대한 욕망이라는 동기가 이해는 되는데, 같은 행위에 대해 자기가 한 것은 절세라고 우기는 진보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타인의 성적 욕망에 대해서는 일체 인정하지 않으며 강간이고 범죄라 비난하다가 자신의 경우는 오해라고 주장하는 남성 페미니스트가 더 조롱을 받는 것과 같은 이치다.
타인에게는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한 그 이중성에 대한 분노가 진보에게로 향하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다른 종류의 해악도 있다.
석진환과 신학림의 사례는 금전거래가 오간 사실이 명백해 사회통념상 부패로 인정되기가 쉽다.
그러나 진보의 부패는 꼭 금품수수같은 형태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모든 부패는 해악이지만 진보의 부패가 더 위험하고 해악을 끼치는 이유는, 진보는 부패의 개념을 바꾸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실 더 진지하게 다뤄져야 할 문제다.
한 떄 미러링 운동으로 지탄을 받았던 페미니스트들의 예를 보자.
'메갈'이 남성을 향해 성기조롱, 욕설, 비하, 사이버불링 등을 하면서 이를 미러링 운동으로 포장했을 때 진보진영만 이를 혐오행위라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의에 맞서는 정의로운 존재로 추앙했다.
그 때문에 '자기가 하는 짓이 X신임을 아는 X신=일베 자기가 하는 짓이 X신임을 모르는 X신=메갈' 이라는 공식이 대중적으로 정립됐다.
적어도 대중의 세계에서 일베와 메갈은 동의어다.
그러나 공적 담론의 장에서 메갈은 여전히 '전위에 선 페미니즘 전사이며 혐오집단인 일베에 대항한 유일한 당사자이며 정의의 용사'다.
이처럼 대중의 인식과 괴리된 진보진영의 메갈 옹호로 얼마나 많은 혼란과 갈등이 일어났는가? 극단주의자들을 자신의 대표로 삼으면서 진보라는 진영의 도덕성과 정당성은 추락했고, 이들이 정의의 개념을 왜곡한 후과는 컸다.
옳은 것에 대한 기준이 사라지니 서로가 지켜야 할, 그리고 지켜왔던 '선'이 무너지고 오늘날 청년남녀 사이에는 증오하는 문화가 정착됐다.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도덕, 정의, 불의와 같은 개념을 아예 바꿔버리는 것, 이것이 진보의 부패와 타락이 더 해악인 이유다.
대중은 더 이상 진보라는 진영을 가난하지만 정의로운 집단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진보매체들을 향한 '한경오는 돈없는 조중동'이라는 비난이 대표적이다.
다시 석진환과 신학림의 사례로 돌아와보자.(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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