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이 틀렸다고 해서 그 반대의 것이 옳아지는 것은 아니다(ft: 길복순)
이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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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06 12:38 | 최종 수정 2023.12.09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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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이 틀렸다고 해서 그 반대의 것이 옳아지는 것은 아니다.
나이 많은 남자와 어린 여자의 사랑을 성차별적이라고 비난하는 페미니스트들이 곧잘 저지르는 오류는, 그 반대의 경우인 나이 많은 여자와 연하남의 사랑은 옳고 더 우월하다 주장한다는 점이다.
나이 많은 남자와 어린 여자의 사랑이 틀린 것도 아니지만, 그것이 틀렸다고 생각할 수는 있다 해도 그 반대가 저절로 옳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고등교육을 받고, 아니 꼭 고등교육을 받지 않아도 삶의 경험이 어느 정도 쌓인 성인이라면 당연히 알 수 있고, 알아야 한다.
불행하게도 이 당연한 사실을 모르는 어른들이 있고, 그 어른들은 대부분 페미니즘이라는 이념에 도취되어 있으며, 더 불행하게도 한국사회는 그런 이들이 중요한 공론장인 언론의 지면에 정기적으로 기고를 한다.
<나의 아저씨>에 발작적 분노를 보이다가 <밥 잘사주는 누나>에 환호하는 페미니스트 비평가 사례가 대표적이다.
빨간머리의 인어공주가 틀렸다고 생각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서 흑인어 공주가 저절로 옳아지는 것은 아니다.
'알탕'영화가 틀렸다고 해서 걸캅스가 옳아지는 것도 당연히 아니다.
이러한 사안에서 필요한 일은 '틀렸다'는 전제에 대한 선행적 판단이다.
나이 많은 남자와 어린 여자의 사랑은 왜 틀린 것인가? 이것이 왜 성차별이라 비난받을 일인가? 현실에 존재하는 사랑의 형태를 표현하는 것에 차별의 혐의를 받아야 한다면 창작자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는 자기검열로 이어지며 문화라는 영역의 생명력을 갉아먹는 결과로 돌아온다.
최근 공개된 <길복순>에 대한 감상들을 읽는데 한 페미니스트의 글이 눈에 띄었다.
그간 아재와 젊은 여성 관계가 불편했는데 길복순역을 맡은 전도연이 전작인 일타스캔들에서는 열살 차이 정경호와 사랑을 하고, 길복순에서는 아홉살 차이 구교환이랑 치정 관계여서 기쁘다고 한다.
더글로리 송혜교는 이도현보다 열네살이나 많았는데 이제 이런것이 아무렇지 않게 된 것이 기쁘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페미니스트식 사고의 흐름이다.
원래 우리는 아재-아가씨든 누나-동생이든 아무렇지 않았다.
일찍이 너는 학생이고 나는 선생이었던 연상녀 교사 김하늘은 남학생이랑 사랑을 했고, 이미숙은 11살 연하였던 이정재와 아찔한 정사를 나눴으며, 김희애는 19세 연하 유아인의 볼을 꼬집으며 특급칭찬을 날렸다.
송혜교와 이도현은 현실 나이차이가 극중 나이 설정과 안맞아 어색하다는 평이 있었고, 친구들 배역과도 마찬가지였지만 작품 자체의 흥행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걸출한 언니들은 계속 연하남과 로맨스물을 찍어왔고 대중들은 이를 특별히 옳다거나 틀렸다고 하지 않았다.
단지 작품이 재미있는지 없는지로 판단했고 흥행여부가 갈렸을 뿐이다.
그 반대로 남성이 연상인 숱한 로맨스물도 둘의 나이차이가 아니라 작품 자체의 완성도가 대중의 선택을 좌우해 왔지 나이차이를 문제삼지 않았다.
연상녀-연하남 사랑이 무슨 대단한 평등의 완성이고 전복적 표현인양 호들갑스러운 페미니스트들만 나이에 의미를 부여해 특별하게 취급하고 환호할 뿐이다.
옳고그름의 영역이 아닌 것을 옳고그름의 영역으로 끌고가 맞다, 틀렸다 심판하는 일이 오늘날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정의중독에 빠진 페미니스트와 피씨주의자들이 벌이고 있는 짓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페미니스트 자신이 스스로의 주장이 가진 부조리를 깨닫지 못한다는 점이다.
위 길복순을 언급한 페미니스트는 같은 글에서 인생에서 사랑이라는 것의 어쩌지 못하는 절대성을 인정한다.
관계의 난이도를 결정하고, 인간의 약점으로 작동하고, 정신줄을 놓고, 실수하게 하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랑이라는 치명적 요소를 언급한다.
그런 것이 사랑이라는 걸 안다면, 무엇도 어쩌지 못하는 게 사랑이고 인생은 그런 것이라면, 애초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데 고작 남자의 나이가 많다는 따위를 문제삼고 있는 자신의 말이 왜 부조리한지 알아차려야 할 것인데, 이념에 빠진 사람들은 합리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다.
합리적 사고가 가능하다면 그러한 이념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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