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민주진보라 칭하는 진영의 '스윗'한 남성 지식인들의 어리석음
이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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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1 22:40 | 최종 수정 2023.12.0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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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진보라 칭하는 진영의 '스윗'한 남성지식인들이 특히 어리석은 영역이 있다.
페미니즘, 페미니스트, 미투, 성범죄 같은 사안들이다.
최근 동일인물이 쓴 글 두 개가 눈에 띄었다.
특정인에 대한 비판을 위한 글이 아니라 이런 사례에 대한 이해에 적절해 예시로 활용한다.
진보적 지식인들의 특성 가운데 하나가 자신의 지적 능력과 정의감에 대한 과신이다.
그러나 그러한 지성과 정의감이 선택적으로 발휘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특히 성범죄 사안에서 그렇다.
아래 사진1과 2를 보자.
사진1.
몇개월 전 발언 사진2.
최근 발언 위 사진은 민주진보진영의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알려진 분의 글이다.
그는 자신이 했던 1과 같은 발언이 사진2와 같은 사태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우리편 또는 내가 아는(알든 모르든 지지하는) 사람에 대한 미투에서는 악의적인 목적을 가진 음모 가능성을 주장한다.
아마도 자신은 증거영상을 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 것이지 같은 편이라 옹호하는 건 아니라 믿을 것이다.
미투를 용기있는 행동이나 여성들의 정당하고 정의로운 행위로 규정하고 무조건적 지지와 찬사를 보냈던 이들이 자신의 진영에서 피해자가 나올 때면 미투를 악용하지 말라고 한다.
이러한 발언 또한 미투는 곧 정의라는 전제에 기반한다.
애초 한국에서 본래의 미투에 해당하는 운동은 존재하지 않았다.(가해자 미특정, 폭로자 실명공개, 처벌이 아닌 사회계몽을 목적으로 하는 본래 미투운동에도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사법적 처리가 불가능한 상태가 아님에도 무차별적 실명폭로를 택해 여론재판과 마녀사냥의 제단에 바치는 건 미투의 방식도, 목적도 아니었다.
'피해자의 목소리가 증거'라며 미투를 검증의 대상이 아닌 믿음의 영역으로 규정해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게 한국사회의 미투운동이다.
위 발언자인 교수는 '미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용기있는 사람들에 의해 힘들게 자리잡고 있다'며 여전히 미투를 지지하는데, 과연 오늘날 사람들에게 미투하면 뭐가 연상되는지 묻는다면 정의나 용기를 말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미투보도 당시 JTBC 여성기자의 발언 수년간 그 부작용을 목도하면서도 미투라는 행위의 본질에 대한 성찰은 고사하고 여성계에 대한 아첨은 깔아둔 채 우리편이 당할 때에만 소극적으로 나서는 스윗한 진보남성들한테 미투운동의 본질적 폭력성과 위헌성, 비인간성에 대한 지적은 여전히 성역이요 금기다.
오늘날 남성에 대해 여성들이 제기하는 성적 행위에 대한 모든 종류의 문제제기는 미투라 일컬어진다.
또한 미투는 폭로, 무고, 거짓말, 복수, 인생나락, 여자들의 나쁜 무기로 인식된다.
진짜 피해자와 가짜 피해자를 늘상 가려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것이 제대로 된 운동이라면 대중의 인식 속에 이렇게 자리잡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행동들을 용기와 정의라 칭하며 이를 주도하는 페미니스트 진영과, 미투만 터지면 온라인을 이용해 즉각 마녀사냥 네트워크를 활용해 남성일반을 가해자로 만들고 정치적, 사회적 권력을 획득해 온 넷페미운동의 주력부대 '이대녀'에 이들은 어떤 찬사를 바쳐왔는가? 사진1에서 위 교수의 예전 발언을 보자.
"보수적이자 자신들의 권익에 목숨거는 이대남, 진보적이고 동물을 사랑하고 생태적이며, 성평등에 열려있는 이대녀, 앞으로 사회변화의 주역이 되어야 하는 이대녀.
이대녀들이 이대남을 코찔이로 본다"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 있는 지식인이라면 후배세대이자 자식들이자 동시대의 청년들을 이런식으로 갈라놓는 말, 특정한 동료시민 집단을 후려치는 말을 공개적으로 내뱉기 어렵다.
이는 진보, 지식인, 기성세대, 교수 등 그를 이루는 모든 면에서 부적절하다.
위 발언처럼 그간 이대남에 대한 마녀사냥식의 공격과 낙인, 조롱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가리지 않고 존재해왔다.
특히 선거에서 패한 진보진영에서 더했다.
2찍남, 도태남이라며 그들의 정치적 선택이나 존재 자체에 대해 악의적인 언어로 공격하고 조롱했다.
애초부터 청년남성을 향해 이러한 조롱과 낙인을 주도한 것이 바로 영페미들인 이대녀와 넷페미니스트들이 합세한 페미니스트 진영이었다.
위 교수가 상찬한 이대녀들의 성평등 의식이란 어떤 것일까? 과연 정의로운 것일까? 그들이 성평등 달성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들 중 가장 큰 영역이 사진2에서 문제제기 하고 있는 미투와 같은 성범죄에 대한 무조건적인 단죄와 엄벌이다.
이들은 여성의 말이 곧 증거요 진실이라며 여성은 폭로한 즉시 진실된 피해자의 지위에 둔다.
문제제기나 사실관계 확인을 통한 검증 시도는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이 두 개념은 폐지되어야 하며 별도의 정의와 제도화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라는 개념을 이용해 차단한다.
결국 이들은 남성 일반을 가해자, 잠재적 범죄자, 이기주의자, 차별주의자, 여성혐오주의자로 규정해 교정이 필요한 이등시민을 만든다.
이러한 논리가 스윗한 남성권력자들에게 먹힌 결과 사회정책적으로는 기이한 성평등 정책이 만들어졌다.
즉 여성은 본래적인 피해자이므로 가해자인 남성집단을 끝없이 교정과 개조가 필요한 유해한 존재로 규정하고 성인지 교육을 통해 개조작업을 관철하려는 것이다.
오늘날 전 사회적으로 진행 중인 온갖 성인지감수성 정책들, 성평등 정책들의 기반 논리다.
이러한 사회적 노력을 통해 비로소 여성에 대한 성범죄가 사라지는 게 이들이 주장하는 '성평등' 사회의 상이다.
사회구성원을 성별 정체성에 따라 집단화한 후 한쪽에는 무한한 통제 권력을 쥐어주고, 한쪽은 집단적으로 기본권을 박탈해 균형을 맞추는 것이 열린 성평등인가? 그런 그들에게 오늘날과 같은 막무가내식 권력을 휘두르도록 만들어준 게 바로 사진1과 같은 무지성적인 발언을 공개적으로 해온 스윗 진보 지식인 남성들이다.
그런 세상을 만들어놓으니 같은 편의 남성들도 그 그물을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자신들의 행동이 원인이 되어 이러한 결과가 만들어진 것을 추론하는 데에는 왜 지성과 판단력이 발동하지 않을까.
또 하나, 이대녀가 이대남을 코찔이로 본다는 말을 인용해 이대남 조롱에 동참하는 남성 페미니스트들의 글을 볼 때마다 과연 그녀들이 글쓴이와 같은 진보, 중년, 남성 지식인들에 대해서는 어떤 언어로 조롱하는지 알기는 할까 궁금하다.
열심히 아첨하고 찬사를 바쳐온 그들의 바람대로 스윗하고 멋진 미중년, 뇌섹남, 세대차이 못느낄 정도로 힙하게 나이든 남성 페미니스트 지식인으로 봐줄거라 생각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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