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범죄도시2>가 천만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큰 타격을 입은 한국영화계에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못마땅한 젠더비평가가 있다.
그녀의 글을 보자.
"마동석이라는 판타지 위에 지어 올린 남초지대"라는 제목으로 시작한다.
마동석(극중 마석도)이라는 파워풀한 남성캐릭터와 그 못지않게 남성성 넘치는 악당 손석구(극중 강해상)까지, 남성들이 주인공인 이 영화에 대한 불만을 담고 있다.
출처: 한겨레
이 젠더비평가는 남초영화를 비판하기 위해 2017년의 영화들인 <택시운전사> <공조> <범죄도시> <군함도> <청년경찰> <남한산성>을 모조리 '남성영화'라는 카테고리 하나로 몰아넣는다.
악의적인 카테고리라이징이다.
실화의 재연(택시운전사, 군함도, 남한산성, 범죄도시)이거나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남북 요원 사이의 우정을 그린 액션영화를 두고, 남자가 주연이라는 이유 하나로 '남성영화'로 몰아넣는 무지함은 젠더밖에 모르는 감수성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출처: 한겨레
그런데 현대사, 분단, 한국사 등 다양한 한국적 특수성을 소재로 삼아 다양한 장르로 담아낸 영화들은 오직 남성영화라고 못마땅해하던 젠더비평가는, <범죄도시2>가 한국적 특수성을 탈각하고 베트남을 타자화했다고 나무란다.
액션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할 뿐인 나라에 대해 타자화했다고 비난하면, 서울에 와서 어벤져스를 찍고 간 마블도 한국을 타자화했다고 비난받아야 할 것이다.
정작 한국의 영화팬들은 마블의 영화에 등장하는 한국 간판들을 보며 다른 나라의 관객은 갖지 못하는 즐거움을 더 누렸는데 말이다.
타자화라는 개념은 이 주장에서 대체 어떤 역할을 하는가?
젠더비평가는 <범죄도시1>편에서 조선족 여성이 재현되는 방식을 비난하다가 2편에서는 여자가 없는 남초세계로만 그려 위험을 비껴갔다고 비난한다.
일종의 ‘펜스룰’이 작동했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여자들과 동석하지도 어울리지도 않는다.
여성에 대한 상상력이 빈약한 남성영화에서 여자를 그려봐야 문제만 일으키는(욕만 먹는) 상황에서 그냥 안전하게 배제하면서 여성은 물리적으로도 사라졌다."(손희정)
당연한 현상이다.
여성을 물리적으로 사라지게 하는 데에는 젠더비평가들의 역할이 컸다.
여성이 주연이 아닌 영화는 들러리로 취급한다 비난하고, 여성이 섹시한 캐릭터나 유흥업소 종사자로 등장하면 성적대상화, 성상품화라 비난하고, 여성이 극중 문제를 일으키면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강화한다고 비난하는 현실에서 두루두루 대중적 사랑을 받아야 하는 창작자라면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범죄도시2>편에는 박지영이라는 중견 여배우가 강단 있는 캐릭터로 인상깊게 등장한다.
여성을 지웠다는 서사를 사실로 만들어야 하는 젠더비평가의 눈에 박지영은 아예 보이지 않는다.
출처: 한겨레
케이(K)-자부심을 거론한 대목도 갸우뚱하다.
젠더비평가는 “우리도 이제 선진국”이라는 케이(K)-자부심이 이제 한국영화에서 구구절절한 사연을 없애 한국적 특수성을 거세하고 보편영화"가 됐다고 한다.
코리안 좀비물로 흥행한 <부산행>에서 마동석이라는 배우와 캐릭터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바 있다.
날렵하게 몸을 잘 쓰는 액션배우들에게 볼 수 없던 매력 때문이다.
마동석은 비현실적으로 건장한 팔뚝과 몸집에서 나오는 맨주먹 파워로 독특하고 원초적인 매력을 발산했다.
<범죄도시>에서도 마찬가지다.
범죄도시의 마동석은 다른 나라에서 제작한다고 했을 때 오히려 대체불가능한 캐릭터다. "미국말을 쓰는 백인 남자 둘을 놓아도 아무런 이질감이 없다"고 젠더비평가는 주장하지만, 마동석의 자리에 미국말을 쓰는 백인을 데려다놓은들 마동석의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솔직히 이 주장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범죄도시2>가 서양인으로 바꿔도 어색하지 않은 보편성을 획득했고 그게 성공요인이라는 것인지, K-자부심이 등장하는 맥락을 알 수가 없다.
독특한 매력을 가진 배우 마동석
"K-컬처의 성공 이유는 '여성의 시선'"
이제 젠더비평의 세계에서 현실세계로 눈을 돌려보자.
젠더비평가의 주장과 달리 K컬처가 세계적으로 성공하는 이유에 대해 해외에서는 ‘여성의 시선(Female Gaze)’을 꼽는다.
K콘텐츠가 여성의 입장에서 로맨스와 감정을 보여주고, 한국의 대중문화와 소비의 많은 부분이 여성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출처: 조선일보
페미니스트들은 '알탕'영화라며 남자배우 중심의 한국영화를 비하하고 못마땅해 하지만, 대중문화에서 티켓파워를 가진 건 여성이며 여성들은 로맨스 못지않게 '근육질과 주먹질이 만들어내는 남성 신체의 매혹' 또한 사랑한다.
주요 소비자가 여성이니 여성의 욕망을 구현하는 것이고, 당연히 그 과정에서 여성이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2017년에 꽤 흥행한 작품을 만든 여성프로듀서, 여성제작자, 여성마케터가 모인 자리에서 내가 물었다.
"왜 이렇게 알탕영화가 성공하는 걸까요?" 그녀들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여자들이 원하니까요.
어떤 영화를 볼지 결정하는 권한은 여자들이 가지고 있어요.
시장은 당연히 그걸 따라가죠."
여자가 소모된다고 비난해서 여성들의 배역을 없애고, 여성배우가 설자리를 빼앗는 건 정작 페미니스트들이다.
이들의 감정적이고 이념적인 검열 때문에 여성의 일자리와 욕망은 거세된다.
여성 투탑 주연에 비중있는 조연까지 여자였던 영화 <걸캅스>는 페미니스트들의 영혼보내기 같은 운동에도 불구하고 흥행과 비평 둘 모두 실패했다.
여자가 나와야만 여성 서사고, 여성 서사는 정의로운 것이고, 여성 서사가 어떤 영화에서든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저차원적인 이념적 검열이다.
여성대중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작품에 대한 선택으로 드러내고 있다.
젠더비평가가 못마땅해하는 남초영화를 여성관객들은 좋아한다.
여성대중은 <걸캅스>보다 <공조>나 <범죄도시>를 선택했다.
이들은 때로 <82년생 김지영>이나 <아이캔 스피크> <엑시트>를 선택하기도 한다.
여성대중은 자신들의 욕망과 감정을 건드리는 작품을 선택하고 소비한다.
그 사실을 젠더비평가들도 알고 있다.
만일 (그들 기준으로)여성혐오인 콘텐츠를 남성들이 소비한다면 페미니스트 비평가는 남성대중 비난에 대해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기준으로)여성을 배제한 나쁜 작품을 여성들이 소비하는 상황에서는 곤란해진다.
그래서 여성대중을 직접 욕하지는 못하고 이렇게 갈팡질팡하는 글을, 무엇이 문제라고 짚지는 못하겠지만 감정적 못마땅함은 해소하려는 '완장질'에 불과한 글을, 그럴듯한 용어를 동원해가며 쓰는 것이다.
생식기 숫자에 집착하는 것은 비평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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