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영화 속 히어로 군단 ‘어벤져스’ 이야기다.
지구 방어를 위한 전투마다 민간인들이 희생되자 미국 정부는 ‘히어로등록법’을 만들어 어벤져스에게 서명을 요구한다.
아이언맨은 선한 의도로는 감당하지 못할 부작용을 생각해 통제를 받아들이자 주장하고, 캡틴 아메리카는 언제든 자의적으로 권력을 남용하는 정부에 통제권을 넘겨줄 수 없다며 맞선다.
이것은 한국 사회의 이야기다.
지난 4월 여야 3당 의원들이 ‘성차별·성희롱의 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핵심은 입증책임이다.
‘이 법과 관련한 분쟁 해결에 있어서 입증책임은 성차별·성희롱 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자의 상대방이 부담’하도록 했다.
제1야당 의원은 끔찍한 가정폭력 피해를 예방하겠다며 현행범이 아닌데도 체포를 강제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행정부인 법무부는 무고 고소로부터 여성들을 보호한다며 위헌적인 무고수사 유예 지침을 시행하고, 대법원은 성범죄를 더 정의롭게 판결하기 위해 정당한 절차 없이 ‘성 인지 감수성’을 사실상의 증거법칙으로 도입했다.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 심지어 영화 속 대악당인 타노스마저도 약탈과 전쟁, 폭력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원한다.
한국의 권력기관들 역시 범죄의 억지와 안전의 확보, 약자 보호가 목표다.
“옳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쓰든 정당한가?”라고 묻는다면 대부분 아니라고 답하지만 이 원칙은 곧잘 잊는다.
타노스는 우주 생명체 절반을 희생시키고, 아이언맨은 개인의 권리를 정부에 넘기는 방식으로 목적을 이루려고 한다.
대한민국의 3대 헌법기관은 헌법, 형사법, 형사소송법의 대원칙들을 훼손하면서 ‘선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무죄추정의 원칙, 법률유보의 원칙,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이 우선인 원칙들은 악한 권력이 아니라 선한 의지들 때문에 위협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집중해야 할 상대는 국가다.
개별 악인의 응징을 위해 모두의 권리를 내어줄 수는 없다.
아무리 중차대한 목적일지라도 국민에 대한 처벌과 규제가 정당성을 가지려면 먼저, 국가 자신이 법적 자격을 취득해야 한다.
그 자격의 핵심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훼손하지 않고, 시민들 사이의 동등한 지위를 보장하는 공정성이다. 사적 제재와 야만적인 폭압기구의 지배를 겪으며 인류가 합의한 소중한 원칙들이다.
그럼에도, ‘그럼에도의 원칙’을 견지하는 일은 어렵다.
선한 목적은 구체적인 절실함과 늘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원칙을 고수하다 지면 결국 끝 아니냐는 당연한 물음이 따라붙는다.
어벤져스의 리더 캡틴 아메리카는 답한다.
“지더라도 함께 지는 거지.” 우리를 지켜온 힘은 강력한 국가가 아니라 ‘그럼에도’ 함께 지는 길을 택한 시민들의 견고한 권리의식이었다.
그의 말처럼 완벽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
그리고 땡큐, 어벤져스.
<이선옥 작가·이선옥닷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