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작용을 피하고, 불편한 경험을 일절 차단하려는 태도가 관계의 법칙이 되는 사회에서는 강하고 능력 있는 어른으로 성숙하는 과정도 함께 차단된다.
면접관 앞에서의 ‘스피치’는 달변이지만 구체적 타인과 통화는 두려워하고, 온라인에 불쾌한 경험을 사후 고발하는 일은 익숙하지만, 의사표현 한마디로 현실 상황을 해결하는 경험은 하지 못하는 아이 상태의 어른들이 늘게 된다.
주간경향 연재-7(원본링크)
상호작용 기피를 권하는 사회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친구는 집을 뛰쳐나와 무작정 택시를 잡아탔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나왔어요.
조금만 달리다가 집으로 돌아갈 테니 아무 데나 가주세요.
처음 보는 기사님한테 이런 얘기를 하게 되네요.” “제 뒷자리에서 우신 손님 많습니다.
혹시 하고 싶은 얘기 있으면 마음껏 하세요.”
태어나 처음 만난 사람에게 친구는 어디에도 하지 못한 내밀한 얘기를 털어놨다.
인생의 고비를 만난 낯선 여인에게 기사님은 적절한 거리의 속 깊은 이웃이 돼 주었다.
익명의 타인이어서 가능한 고백, 다시 만날 일이 없다 해도 충분한 위로.
살다 보면 우리는 서로를 모른 채 구원을 주고받는 타인이 된다.
얼마 전 정치권의 한 관료와 ‘타다’ 얘기를 나눴다.
타다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은 승객에게 일절 말을 걸지 않고, 불편을 느낄 만한 어떤 상황도 만들지 않는 친절한 서비스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 택시는 대시민 서비스 개선보다 이윤에만 집중한 전근대적인 경영방식이 경쟁력 저하로 이어졌다는 진단이다.
“아니, 손님에게 말 걸지 않는다는 이 간단한 법칙이 그렇게 어렵나요?” 살짝 목소리가 높아졌다.
친절은 상호작용을 통해 결정되는 용어인데 어떠한 상호작용도 금지하는 게 친절이라니.
나는 이의를 제기했다.
“택시기사가 손님에게 말을 거는 행위가 곧 무례인가요?” 기사는 승객에게 호의의 말을 건네고, 대화를 원치 않을 땐 의사 표현을 하면 되는 문제 아닌가.
상호작용이 포함된 서비스를 평면적으로 규제하는 건 올바른 방식이 아니다.
우리는 자라면서 타인을 향한 말과 행동의 법칙을 자연스레 체득한다.
불쾌한 일을 겪고,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 당혹스러울 때도 있지만 뜻밖의 위로와 우연한 행운도 경험한다.
불쾌한 일에는 어떻게 대처할지, 상대의 변화를 끌어낼 방법은 무엇인지, 나는 타인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돌아보고 다듬어가는 과정 모두가 개인과 사회에 놓인 도전과제다.
상호작용을 피하고, 불편한 경험을 일절 차단하려는 태도가 관계의 법칙이 되는 사회에서는 강하고 능력 있는 어른으로 성숙하는 과정도 함께 차단된다.
면접관 앞에서의 ‘스피치’는 달변이지만 구체적 타인과 통화는 두려워하고, 온라인에 불쾌한 경험을 사후 고발하는 일은 익숙하지만, 의사표현 한마디로 현실 상황을 해결하는 경험은 하지 못하는 아이 상태의 어른들이 늘게 된다.
상호작용을 통해 대응력을 갖추고 적절한 선을 공유한다면 우리는 소비자와 노동자, 동료 시민으로서 동등하고 편안하게 만날 수 있다.
좁은 차 안이 노동의 현장인 택시기사에게 종일 호의의 말 한마디도 나누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건 비인간적인 노동환경이다.
불편을 예리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삶을 편하게 만들려는 노력은 과잉보호와 방어로 이어진다.
이는 한 사람의 성장과 성숙뿐 아니라 공동체의 성격 형성에도 영향을 끼친다.
개방성과 호의를 기본으로 상호작용의 법칙을 체화한 개인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공동체 또한 배려와 우애 속에서 결속할 수 있다.
<이선옥 작가·이선옥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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