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들은 남자배우들이 집단적으로 출연하는 영화를 남자 성기의 일부인 불X의 알에 비유해 '알탕영화'라 비난해왔다. 대체 누구를 향한 분노인지 모를 비난이다.
상업영화 제1의 목표는 흥행이고, 멋진 남자배우들이 떼로 등장하는 영화들이 그나마 침체기에 빠진 한국영화계에서 흥행에 성공해왔다.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제작자들은 당연히 흥행공식을 따르게 된다. 여자배우가 많이 등장하는 영화가 흥행한다면 어떤 제작사든 그런 영화를 만들 것이다.
그런데 페미니스트들은 이를 구조적 성차별이라 주장하며, 영화계에 여자를 위한 제도를 만들것을 요구했고, 그 영향으로 영화콘텐츠제작 지원에 여성감독, 여성작가, 여성배우등이 포함되면 가산점을 주는 제도까지 마련됐다. 정치권에 여성할당을 요구하듯 영화계에도 여성특혜를 요구해 관철한 것이다.
12월 20일자 조선일보에 "평론가 손희정 “서울의봄, 남자 많아 숨막혀… 영화계 남성 서사 과잉”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한국영화에 남자배우들이 집단적으로 등장하고, 남자서사만 과잉되게 다뤄지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하는 페미니스트 평론가의 주장을 보도한 기사다.
영화 <서울의봄>에 남자배우들이 많이 등장해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건 페미니스트여서 그렇다. 페미니즘의 세뇌를 받지 않은 여자관객은 역사적 사실을 모티브로 했고 실화와 싱크로율도 높은 영화에 남자성별이 많다는 이유로 불편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들이 비난하는 '알탕영화'가 한국영화의 수준을 떨어트리거나 산업을 망하게 하지는 않았다. 그나마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여 흥행시키는 산소호흡기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개별영화의 작품성은 다 다르겠지만 알탕영화가 한국영화계를 망쳤다고 볼수는 없다.
그러나 알탕영화를 비난하는 이른바 젠더비평이라는 페미니스트들의 비평은 한국영화비평계의 수준을 현저히 떨어트렸다. 배우 성비를 불편해하는 주장이 비평의 영역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럼에도 이번 조선일보의 기사는 페미니스트의 주장을 지지하려는 의도라기보다는, 오히려 기자가 페미니즘 비평을 비판하도록 드러내주었거나, 보수매체로서 서울의봄이라는 영화의 흥행에 살짝 딴지를 걸고 싶었거나 하는 의도가 아닐까 짐작된다.
굳이 엄청난 유명인도 아닌 평론가의 실명을 거론해 어그로성 제목을 단 것을 보면 그렇다.
그렇다 해도 '한남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용어가 매체에 걸러지지 않고 등장하는 현실은 문제다. 한남은 그저 한국남자의 줄임말이 아니라 한국남자를 비하하고 조롱하는 페미니스트 집단의 비하어다. 처음에 벌레 충을 붙여 한남충이라고 하다가 그 용어를 마구 쓸수 없으니 줄여서 한남으로 쓴다. 공적 용어가 될 수 없는 말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나 통용되는 비하어가 틀린 의미설명까지 달아 지면에 등장하는데 이것이 문제인지도 인식하지 못한다. 만일 '김치녀 시네마틱 유니버스' 따위의 말을 쓰고 매체가 이를 그대로 실어주면서 (김치녀는 한국여자를 단순 비유한 말입니다)라는 설명을 달았다면, 페미니스트들은 당장 여성혐오라며 비난을 퍼붓고 이런 여혐용어가 어떻게 공적 매체에 등장할 수 있느냐며 사과를 요구했을 것이다.
한남충이라는 비하어를 새로운 규범이라 칭한 페미니스트 진영
이런 문제적 현실을 만든 것은 당연히 페미니스트들이다. 이들은 메갈 손가락 모양으로 한국남자 성기가 작다는 밈을 만들어 조롱하다가, 문제가 되면 집게 손가락은 일상적으로 쓰는 흔한 모양인데 왜들 발작하느냐며 오히려 남성들을 또 조롱한다. 한남충을 줄여 한남이라고 쓰다가 문제가 되면 그냥 한국남자의 줄임말일 뿐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비윤리적인 집단문화다.
한남이라는 용어를 공개된 대담에서 사용하는 페미니스트 비평가가 있고, 한남유충이라는 용어를 논문으로 다뤄 학술지에까지 등재시키는 페미니스트 학자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있으니 윤리적 거름망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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