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소수자, 약자 배려라는 제도들이 정작 보호가 필요한 당사자보다 그 구호를 외치는 자들의 권력취득 도구로 기능한다는 사실을 정치권이 극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요즘과 같은 선거시기에는 정치권력을 향한 욕망이 최고조에 달하기 때문에 '약자보호의 제도화'가 어떻게 오남용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여성가산점, 여성할당, 청년할당, 청년배려, 소수자 배려 등의 제도가 있다. 정치에 진출할 때 이러한 제도의 혜택으로 다른 사람보다 쉽게 입문하는 이들이 있다. 문제는 약자성을 내세워 제도의 혜택을 받은 후 권력을 차지했다면 더 이상 약자가 아님에도 기득권을 놓지 않는 경우들이다. 이는 개인의 이기심과 권력욕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설계된 제도 자체가 본질적으로 문제다.
여성, 청년, 장애인, 이주민과 같은 특정한 '정체성 집단' 전체를 약자로 규정하고 그 대표성을 가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 정체성 정치다. 정체성 정치는 본질적으로 권리의 단위가 집단이 아닌 개인이라는 근대국가의 원리와,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적 전제인 공정과 정의의 원칙을 훼손한다.
22대 총선의 공천과정에서 국민의힘 이혜훈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의 김현 후보는 이미 의원 경력이 있는 정치 신인이 아님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산점을 받아 승리 아닌 승리를 얻어냈다. 이 두 후보는 상대 남성 경쟁자들에게 투표에서 뒤졌으나 여성가산점이 더해지는 바람에 극적으로 최종 후보가 될 수 있었다.
이혜훈, 김현과 같은 중진 여성의원들이 정치신인과 약자를 위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여성가산점을 받는 것이 약자 배려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비례대표를 연달아 두 번 하는 청년여성, 장애인여성 의원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2020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에 위장입당해 비례대표 의원에 당선된 후 기본소득당으로 복귀했다가 2024년 총선에서 다시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에 재입당했다. 현재 6번에 배정받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비례대표를 연임할 예정이다.
여성에 청년에 장애인이라는 약자성을 다수 가진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도 2020년 총선에서 국민의힘 위성정당 비례대표 출신이다. 그녀는 2024년 총선에서 지도부에 대한 충성을 보이면서 위성정당으로 차출된 후 다시 비례대표 후보에 입성했다.
용혜인, 김예지와 같이 청년여성, 장애라는 정체성 요소로 의원이 됐던 비례초선들이 다시 그 요소로 비례대표 의원을 하는 것이 제도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제도의 오용과 남용에 해당한다.
용혜인, 김예지 의원의 정체성은 진보청년여성장애인이라는 요소보다 국회의원을 한 번 더하고 싶은 권력욕 넘치는 정치인으로 변화했다. 비례대표제의 취지에도, 여성약자할당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여성 안에서 여성이 다 다르고, 장애 안에서 장애인도 다 다르다. 청년이라는 스펙트럼 또한 매우 넓다. 용혜인, 김예지가 다시 비례대표 의원을 해야할 명분은 매우 부족하다. 오히려 다른 청년, 다른 약자, 다른 전문가에게 돌아가야 할 기회를 기득권이 되어 막아선 형국이다.
용혜인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 출마로 연합정치가 훼손될까봐 불가피하고 어려운 선택을 했다고 항변한다. 그녀의 말이 얼마나 설득력과 명분이 있는지는 대중들의 반응으로 알 수 있다. 김예지 의원 또한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과연 약자와 소수자 배려라는 제도가 이를 이기적으로 활용하는 용혜인, 김예지와 같은 극소수 개인들 외에 누구에게 정의로운 혜택을 주는가? 이런 이들 때문에 제도에 대한 반감이 생기고 문제제기가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이들의 무기는 약자성과 소수자성이다.
현재 국회의원 선거 제도는 1,3,5라는 홀수 순번에 여성을 배치해야 한다는 공직선거법 조항 때문에 모든 정당이 비례대표 당선권과 상위순번에 여성을 배치해야 한다. 게다가 여성은 짝수번호에도 진출할 수 있지만 남성은 불가능하다. 용혜인 의원은 민주당 위성정당에서 짝수번호인 6번을 배정받았다.
이 모든 문제적 현상들이 바로 정체성 정치의 폐해다.
이처럼 정체성 정치는 실제적 다양성을 도외시하고 매우 기형적인 형태로 기회의 평등이라는 공정의 원칙을 파괴한다. 사회의 통합을 위한다는 명분의 제도가 오히려 제도에 대한 불신과 회의,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만을 불러일으킨다.
오늘날 페미니스트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커져 스스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여성이 많아졌다 해도, 정작 페미니즘 자체가 힘을 잃지 않는 이유도 이러한 인간의 이기적인 행동양태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이혜훈과 김현이 페미니스트가 아닐 수는 있지만 여성가산점제가 정의롭지 않다는 이유로 반대하거나 거부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 어떠한 이념에 동의하지 않는다해도 그 이념에서 나온 제도가 내게 이익이 된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여성, 소수자, 장애인, 약자, 성소수자 등의 정체성 요소를 내세워 배타적 특혜를 요구하는 정체성 정치의 폐해가 정치권을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요즘이다. 이러한 제도가 과연 다음 선거에서는 바뀔 수 있을까?
'약자와 소수자 배려라는 정의의 정치를 외면한다'는 이익집단들의 비난을 뚫고 진짜 정의를 구현할 정치 지도자가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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