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당이 정체성 정치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이선옥 승인 2024.04.20 18:46 | 최종 수정 2024.04.20 18:49 의견 0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는 인종, 민족, 종교, 성별, 젠더, 장애, 성적지향, 문화 등 공유되는 집단 정체성을 기반으로 배타적인 정치 동맹을 추구하는 정치 운동이자 사상이다.

PC주의(Political Correctness)는 정치적 올바름 혹은 정치적 교정주의라 불리는데, 말의 표현이나 용어의 사용에서 인종·민족·언어·종교·성차별 등의 편견이 포함되지 않도록 하자는 운동이며 정체성 정치가 구현되는 한 방식이다.

오늘날 한국에서 정체성 정치의 대표주자는 페미니즘이며, 페미니즘은 여성이라는 집단적 성별 정체성을 하나의 권리단위로 취급한다.

장애운동도 마찬가지다. 장애인 안에서 장애인 개인마다의 다름, 사회적 지위의 다름, 필요사항의 다름 등 개인으로서 처한 취약함보다는, 장애라는 집단적 정체성을 하나의 권리단위로 취급한다. 그러한 운동은 주로 진보좌파적 장애인 단체들에 의해 주도된다.

예를 들어 탈시설 운동에 앞장서는 장애인 운동세력은 주로 진보좌파적 장애인 집단인데 이들이 주장하는 탈시설 요구는 장애인 모두의 요구로 다뤄지는 데 비해, 시설의 개선과 확대 등 시설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장애인과 가족들의 목소리는 시민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

목소리와 실행력이 큰 집단이 과대표되거나 때로는 다른 장애인들의 욕구를 왜곡하기도 한다. 이는 집단화된 정체성 정치 운동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부작용이며 본질적 부조리함이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라는 정체성을 앞세운 집단에게 이러한 부조리함을 지적하기란 어렵다. 장애인들의 요구사항에 대해 비판하거나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약자에 대한 연민이라고는 없는 악한 존재로 비난받는 문화적 압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시위방식에 대한 비판을 제기했을때 그에게 쏟아진 장애인 혐오자라는 낙인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준석 대표는 전장연의 시위방식을 비판한 이유로 장애인차별혐오상을 받는 등의 비난을 당했다.

정체성 정치를 구현하는 방식인 PC주의는 이러한 문화적 압력을 제도적 규제로 만들려 시도한다. 여성혐오 발언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그것이다.

이들은 약자에게 불편과 해를 끼치는 모든 언어적, 문화적, 물리적, 정치적 위해요소를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정의의 실현이라고 주장한다.

정체성 정치는 약한 사람들을 돕고 배려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라는 사람들의 선의에 힘입어 권력을 획득해 왔다. 그리고 지금은 막강한 문화적 지배력을 가지게 됐다.

예를 들어 집권여당 대표자들의 회의자리에서 여성 장애인 의원이 다른 대표자들에게 정치적으로 올바른 언어를 쓰라며 교정을 하고, 나머지 지도자들은 이를 기꺼이 수용하는 것이 도덕이나 예의가 아닌 정치적인 행위이며 정의의 수행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진보가 계급의식 대신 PC주의 운동에 빠지고, 보수마저 정치적 올바름을 좇는 정신적 혼돈상태를 맞은 것은 정체성 정치라는 함정에 빠진 진영 리더들의 문제가 크다.

국민의힘 지도부 회의에서 차별언어 바로잡기를 하는 김예지 의원.




오늘 개혁신당의 대변인은 장애인의 날을 맞아 "개혁신당은 장애인의 편입니다"라는 논평을 발표했다. 장애인은 사회적 약자이므로 정치집단이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선다는 선언은 당연한 말로 받아들여진다.

개혁신당 곽대중 대변인의 장애인의날 맞이 논평.




그런데 누구의 편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개혁신당의 대변인은

"한편으로 장애인 이동권을 내세워 동료시민에게 지나친 불편을 초래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용기있는 지적을 계속할 것입니다. 목적을 위해 수단이 모두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라는 말을 굳이 부연했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여론과 당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이준석 대표가 취한 입장을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장애인의 편입니다' 라는 선언은 그러한 부연설명과는 맞지 않는 표현이다. 어떠한 집단의 편에 서겠다는 말은 그 존재의 행위가 아닌 정체성 자체의 편에 서겠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권리의 단위는 집단이 아닌 개인이며, 국가가 대응해야 할 것은 집단적 요구가 아니라 개인이 가진 취약성이다. 그러므로 입헌민주주의국가의 정치조직이 가져야 할 원칙은 헌법적 권리가 정체성 집단에게 귀속되지 않도록 본래 근대국가의 정신을 상기하는 일이다.

장애인이 다른 시민들에게 불편을 초래하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한다면, 장애인이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것을 권리로 요구한다면, 입헌민주주의국가의 정당은 이를 수용할 수 없다.

가스통을 들고와 야시장의 운영권을 요구하는 장애인 집단이 있다. 우리도 먹고살게 해달라며 장애를 가진 신체를 앞세워 위협한다.

장애인의 편이라 선언한 정당은 어떻게 할 것인가?

국립공원의 자연이 훼손된다며 케이블카를 반대하는 운동이 있다. 어떤 장애인들은 우리같은 장애인도 케이블카를 타고 국립공원의 자연경관을 감상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케이블카 설치 반대진영은 이들이 관의 사주를 받은 장애인들이라고 의심한다.

장애인의 편이라 선언한 정당은 어떻게 할 것인가?

탈시설만이 장애인을 위한 것이라 주장하며 시설을 폐쇄하고 장애인을 사회로 데려오는 운동세력이 있고, 다른 편에는 시설이 폐쇄되어 보호를 받지 못해 고통받는 장애인과 가족이 있다. 이들은 시설을 간절히 원한다.

장애인의 편이라 선언한 정당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장애인이라는 집단적 정체성을 권리단위로 보고 그저 약자를 위하는 정치가 올바른 것이라는 표면적 생각에 빠진 정체성 정치는 수많은 이해관계 앞에서 혼란에 빠지게 된다.

장애인 뿐 아니라 다른 정체성 집단 또한 마찬가지다. 사회적 약자라는 개념은 영원불변의 고정된 정체성이 아니다. 물론 장애라는 특성은 다른 구성원에 비해 취약하다. 그러나 신체기능을 상당부분 상실한 경제력 없는 노인은 경제력이 있는 장애인보다 취약할 수 있다. 경증의 장애와 중증의 장애 또한 다르다. 또한 우리모두는 살아가면서 일시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여성 안에서 여성이 다 다르듯, 장애인 안에서 장애인 또한 다 다르다. 탈시설을 원하고 탈시설 후 사회의 원조로 자립이 가능한 장애인과, 상시적 의료지원이 가능한 시설에서만 감당이 가능한 장애인이 있고, 특수한 교육환경이 필요한 장애인과 통합교육을 원하는 장애인이 있다.

이들이 가진 개별적 취약성과 각자의 필요에 합리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정치력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정체성 정치의 본질적 부조리함을 이해한다면 개혁신당은 장애인의 편이라는 선언이 아니라 장애인이 처한 취약성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정당이 되겠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 올바르다.

정체성이 아니라 취약성에 대처한다면 그 안에서 장애인이 가진 취약성들도 당연히 해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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