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인용하는 여성정책연구원과 국회입법조사처의 보고서에도 세계 각국에 존재하는 여성부처 존재와 성평등의 인과관계 또는 상관관계를 입증한 내용은 없다.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사회구성원에 대한 차별과 취약성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지, 국민들은 갈등과 차별로 불만을 쏟아내는데 국제 통계의 상위에 랭크되기 위해 이를 무시한다면 책임 있는 정부의 자세가 아닐 것이다.
필자는 대선 기간에 짧게 방영된 <가면토론회>라는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일이 있다.
프로그램이 전격 폐지되는 바람에 3시간 동안의 녹화분은 방영도 못된 채 사라졌다.
내가 출연한 회차의 주제는 "젠더갈등"이었는데, 소주제로 여가부 폐지, 여성할당제, 성별임금격차, 성범죄를 차례로 다뤘다.
여가부 폐지를 다룰 때 AI라는 별명으로 분한 출연자는 여가부의 존치 근거로 '글로벌 스탠다드'를 들었다.
그는 다른 나라의 여가부 상황을 예를 들어 설명하며,
"영국, 독일, 프랑스, 벨기에 등에 여성 혹은 여성과 관련된 명칭이 섞인 다양한 형태의 부처들이 있으며 백악관에도 위원회 형태로 존재한다.
반대론자들에게 궁금한 게 영국, 독일, 프랑스, 벨기에, 스웨덴, 일본 같은 선진국들은 그럼 왜 여성부를 두고 있겠는가"라고 질문했다.
이들이 성평등한 선진국이 된 것은 그 나라들에 여가부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여가부 존재 여부와 성평등 수준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지금 그와 똑같은 논리를 펴는 곳이 많다.
여성단체는 세계 194개국에 여가부 또는 유사기관이 설치됐다며 이를 폐지하는 건 글로벌 스탠다드 역행이라며 맹공을 퍼붓고, 페미 진영의 언론은 여기에 충실하게 스피커를 대어 증폭시킨다.
여가부 또한 글로벌 스탠다드를 방패막이로 삼는다.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을 비준한 나라에서 어떻게 여가부를 폐지할 수 있느냐-예를 들어 미국은 이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지만 역대 어느 정부보다 여성의 이익을 높이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여성정책연구원과 국회입법조사처의 페미니스트 연구원들은 열심히 이들에게 방어논리를 제공해준다.
출처: 머니투데이
자, 그럼 이들의 글로벌 스탠다드 논리에는 어떠한 문제들이 있는지 하나하나 살펴보자.
첫째, 194개 국가의 여성 혹은 여성관련 기관들이 한국의 여가부처럼 지속적으로 사고를 치고, 성별갈등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폐지요구를 받고 있는가?
그런 국가가 있을수도 있지만 우리가 뉴스로 접한 바는 없다.
다른 나라의 여성관련 부처들이 어떤 활동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한국의 여가부는 외부의 부당한 압력이 아닌 스스로 자초한 문제들 때문에 국민들의 폐지여론에 직면했다는 사실이다.
둘째, 194개국에 여성관련 기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여가부 존립의 합당한 근거가 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이들이 인용하는 여성정책연구원과 국회입법조사처의 보고서에도 성평등과 여성부처 존재의 인과관계 또는 상관관계를 입증한 내용은 없다.
국가별로 권한이나 사무 등에 큰 차이가 있어 이를 단순 비교하여 일반화하기는 어렵다고 적고 있으며, 2016년 여성정책연구원에서 발간한 '해외 여성정책 추진체계 보고서'에는 여성정책 전담기구의 형태나, 기구 명칭의 다양성과 양성평등 수준의 상관성은 보이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즉 여가부가 부처로 존재한다고 해서 양성평등 수준이 높은 국가가 되지 않으며, 폐지된다고 해서 실질적 평등이 구현될 수 없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각 나라마다 정부기구의 구성과 운영은 사정에 맞게 하면 될 일이다.
그러므로 "세계 각국에 다 있으니 우리나라에도 있는 것이 합당하다"는 이들의 주장은 입증도 논증도 아니다.
페미 진영은 성평등 선진국가일수록 여성부가 있다고 하는데 이른바 후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에도 여가부는 존재한다.
오히려 후진국일수록 여성부라는 단독형태의 부처가 존재하고, 여성 외 청소년, 젠더, 평등, 장애, 공정, 기회균등 등의 이름으로 묶는 쪽이 더 많아지고 있다.
여가부가 폐지된다고 해서 한국이 성차별 국가가 되는 일은 없으며, 한국은 이미 글로벌 리더 국가이지 다른 나라의 예를 좇아 따라해야 하는 후진국이 아니다.
제도적 평등을 어느 나라보다 빨리 구현했으며, 여성의 권리신장 면에서도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는 수치들을 가지고 있다.
셋째, 아태지역 유엔여성기구 성평등센터를 한국에 설립하기로 양해각서를 체결했는데 여가부가 없어지면 어떻게 하느냐는 여가부의 주장은 합당한가?
우선 여가부가 말해오지 않은 진실이 있다.
아태지역의 성평등센터가 한국에 설립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이 유엔개발기구 선정 아시아 1위, 세계 10위의 성평등 국가이기 때문이다.
아시아 1위, 세계 10위를 늘상 달성하면서도 국가 차원에서 꽁꽁 숨기고 해당 사실을 자랑하지 않는 사안이 있었던가? 정부와 행정부처가 세계 108위 성차별 국가라는 통계만 인용하면서 늘상 부끄럽다고 반성문을 쓰는 사안을 본 적이 있는가?
아태지역 유엔여성기구 성평등센터 설립 문제는 정부의 조직개편 후 해당 업무에 가장 적절한 기관이 맡아서 대응하면 될 일이다.
여가부가 있어서가 아니라 한국이 아시아 제1의 성평등 국가이기 때문에 주어진 역할이므로 폐지 반대의 합당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여가부는 유엔기구 협약은 어떻게 하느냐며 폐지 반대를 주장한다.
세계적 추세가 곧 옳은 것이라는 주장은 틀렸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는 우리의 길을 찾을 의무가 있다는 견해를 반동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악의로 발현된다.
그럴 때일수록 목소리 큰 이익집단의 공세에 휘둘리지 말고 실질적으로 달성해야 할 목표와 해결해야 할 현실이 무엇이고, 이를 위해 필요한 일이 무엇인가를 찾는 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국민의 삶은 국제 통계의 상위를 차지하는 것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은 통계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사회구성원에 대한 차별과 취약성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지, 국민들은 갈등과 차별로 불만을 쏟아내는데 국제 통계의 상위에 랭크되기 위해 이를 무시한다면 책임 있는 정부의 자세가 아닐 것이다.
페미 진영이 아무리 우리가 세계 108위의 성차별 국가라 한들, 상위권의 빈곤한 내전 국가보다 우리가 성차별한 사회라고 생각할 국민은 페미니스트를 제외하고는 없을 것이다.
출처: 연합뉴스
세계 각국의 상황을 비교할 때 이용하는 국제적 통계는 해당 국가가 제출하는 데이터나 외부적으로 포착한 자료에 근거한 것이므로, 그 자체가 해당국의 상황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어떠한 상황을 판단할 때 부차적인 자료로만 참고하는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
이를 절대화하거나 일반화하는 것을 늘 경계해야 한다.
흔히 어떤 사안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이른바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의 사례를 논거로 제시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국제적 비교라는 행위가 주장을 입증하는 논거가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과정이 포함되어야 정당한 논증이 되는지, 다음 편에서 이어 쓰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