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 교수가 오세훈 후보를 지지하는 연설로 화제가 된 20대 청년들을 일컬어 "실망당한 문지지자가 아니라 본래 극우쪽에 섰던 분들인 것 같다"고 규정했다. 자신이 속한 세력을 지지하지 않는 계층에 대한 비난과 조롱, 막말의 역사는 늘 있어왔다.

노인들은 투표하지 말고 쉬시라는 실언을 했다가 패배한 후보도 있고, 20대 개새끼론을 주장하다 역풍을 맞은 사례도 있다. 노인 비하 발언은 반복되지 않는데 반해 20대 개새끼론은 선거 때마다 여전히 위세다.

이번 서울,부산시장 선거는 정권심판을 위해 투표하겠다는 여론이 높다. 특히 청년들의 분노가 크다.

보수야당을 지지하는 청년들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친여 인사들은 연일 청년들을 향해 날선 말을 내뱉는다. 부동산 정책에 분노하면서 어떻게 원조 부동산 부패세력을 지지하느냐는 거다. 반일을 외치며 뿌리부터 친일인 세력을 지지하는지도 이해 못하겠다고 한다.

도저한 역사의식에다 현실정치감각까지 겸비한 자신들이 볼 때 납득이 안 되는 바보들인 것이다.

박노자의 글을 보자. 오세훈의 유세차에 오른 청년들을 본래 극우였을 것이라 규정한다. 현실 정치에서 투표권을 행사한 지 몇차례 되지도 않은 젊은이들에게 신자유주의 레짐에서 자랐기 때문에 극우사상을 쉽게 받아들였을 것이므로 극우라고 쉽게 결론을 낸다.

박노자에게 극우란 무엇일까?


박노자의 이론에서는 불공정 체제의 피해자들이라면 왼쪽으로 가야하는데 현실에서 이들은 우파정당을 지지한다. 그렇다면 왜 그러는가를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신자유주의 레짐을 내면화해서 그렇다고 간단히 치부한다.

역사의식이 없다거나 교육을 잘 못 받아서 그렇다는 민주당 인사들의 '20대 개새끼론' 좌파 버전이다. 투표는 적극적 지지행위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심판행위로서의 의미 또한 크다. 대의민주주의는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현 집권세력에 대한 심판의 의미로서 하는 투표행위를 내추럴본 극우세력으로 매도하는 것은 비열하고 무지한 일이다. 나는 권리와 관용, 자유에 대해 좌파의 이론가들이 했던 말에 영감을 받았다.

그들은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지에 대해 그간 정규교육에서 배우지 못했던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런 말이 젊은 가슴을 뛰게 했다.

평생 자신을 반대하고 불복종 운동을 전개한 사르트르를 구속하고 처단하라는 지지자들을 향해 "그도 프랑스야. 볼테르를 감옥에 가둘 수는 없네" 라고 일갈했다는 드골의 명언,

저급한 풍자라 해도 그러한 표현이 보호되어야 결국 사회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래리 플린트의 사례. 영화 래리 플린트에는 "나같은 쓰레기가 헌법의 보호를 받는다면 세상 사람들 모두가 보호받을 것이다" 라는 대사가 나온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할 때 쓰이던 단골 사례였다. 좌파는 이런 예를 들어가며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표현의 자유가 왜 민주주의 사회의 필요충분조건인지를 가르쳤다.

이들의 논리를 받아들이며 나는 민주사회의 교양시민이 된 것 같았다. 그랬던 그들은 이제 본래적 의미의 자유, 존중, 권리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왜곡하고,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무시하며, 타인의 신념을 존중하기는 커녕 자의적으로 왜곡해 낙인찍는 데에 앞장선다.

자신만이 옳다는 선민의식으로 무장한 채 철지난 이론을 폐기하기보다는 현상을 억지스레 자기 논리에 꿰어맞춘다.

박노자 교수의 20대 극우발언을 여러 매체가 보도했다. 오세훈의 유세차에 선 청년들이 다음 선거에서도 같은 지지를 반복할지 알 수 없다.

내추럴 본 극우라면 그럴수도 있을 테지만 그들이 정말 내추럴 본 극우라면 애초 문재인 정권을 지지했다고 말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박노자는 "상당수의 신자유주의 피해자들이 지금 자기 손으로 미래의 새로운 신자유주의적 적폐 정권의 탄생에 일조하는, 웃지 못할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내 이론에 부합하지 않는 현상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도, 숙고도, 성찰도 할 줄 모르는 좌파 지식인의 논평일 뿐이다. '우파정당 지지=극우' 라는 단순무지한 공식을 되풀이하며 청년들에게 막말을 해대는 선민의식 가득한 지식인. 자신이야말로 이런 세상에 살게 한 기성세대 중 하나라는 책임의식은 찾아볼 수 없는 '좌파꼰대'들이 여전히 청년들의 멱살을 잡고 호통치는 오늘의 현실이야 말로 '웃지 못할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