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이라는 개념을 '출생률'이라는 개념으로 고쳐 말하는 것은, 크게 개념 사용의 정확성에 따른 정책 대응 면에서의 문제와, 이념집단이 자신들의 이념에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기 위해 다른 이들의 언어생활의 자유에 압박을 가하는 면에서의 문제가 있다.
출생률이라는 용어사용의 문제를 논리적으로 전개하기 전에 먼저 전제해야 할 것은, 출생률이라는 용어 사용은 저출산 문제의 해결과 무관한 단지 이데올로기적 용어사용 놀음이라는 것이다.
각각의 문제에 대해 두 편에 걸쳐 게재한다.
지난 첫 번째 글에서 '출산율'과 '출생률'은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용어라는 것을 개념정의와 예시를 통해 입증했다.
두 번째 글에서는 이념집단의 언어지배 전략이 왜 위험한지, 그리고 왜 받아들여져서는 안되는지 설명하기로 한다.
'출산율'을 '출생률'로 대체하라는 요구가 수용되어서는 안 되는 두 번째 이유는, 이념적 이유로 용어대체를 요구하면서 타인을 부당하게 비난하고 담론의 자유를 해치는 것은 언어생활에 관한 원칙을 위반하기 때문이다.
이 두 번째 이유는 출산율/출생률 개념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생활 일반에 대한 실천적 원칙에 기반한다. 즉 대체 용어가 원래 용어가 가리키는 개념상 참/거짓에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적용되어야 하는 원칙이라는 뜻이다.
언어 대체 요구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참/거짓이 아니라 그것을 요구하는 운동집단의 행동 동기인 '이념적 지배'라는 본질이다.
보통 어떠한 개념의 대체가 필요한 이유는 이미 개념 자체가 결론이나 평가를 오도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거나, 새로운 개념으로 대체하면 불명확하고 정교하지 못했던 기존의 개념과 관련된 논증이 개선되기 때문이다.
형사재판의 용어가 이러한 예에 해당한다. 현재 우리 사법절차에서는 아직 형사재판이 확정되지 않은 피고인을 ‘가해자’로 표기하거나 고소인이나 증인, 소외인을 ‘피해자’로 표기한다. 이는 유죄추정의 원리에서만 나올 수 있는 개념이다. 따라서 잘못된 원리에 따른 결론을 개념 자체에 내포함으로써 사고를 오도하는 이와 같은 용어는 수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출생률'로의 대체는 전혀 다르다. 출산율은 하나의 사실적 현상을 포착하는 개념일 뿐, 페미니스트 집단의 주장처럼 '여성이 어떤 문제적 사회현상의 원인'이라는 결론이 전혀 내포되어 있지 않다.
동일한 시대의 어떠한 상태가 출산율이라는 개념을 통해 포착될 수도 있고 출생율이라는 개념으로 포착될 수도 있다. 두 개념은 그 사실적 현상이 갖고 있는 여러 특성들 중 일부를 보여줄 뿐 가치판단을 가진 개념이 아니다.
그럼에도 출생률로의 대체를 요구하는 집단은 자신의 이데올로기에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언어생활의 자유에 압박을 가하여 축소시키려 한다. 지금까지 아무 문제없이 정확한 용도로 쓰이던 개념을 억지로 교체하고자 하는 그들의 행위가 수용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페미니스트 집단의 '출생률' 사용 주장은 이념에 근거한 무논리 자유연상
페미니스트 집단의 '출생률' 용어 사용 주장이 왜 논리적으로 터무니없는 것인지 논증해보자.
만일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처럼 ‘출산율’이라는 개념 자체가 출산율 저하의 주된 원인을 여성에게 돌리고 압박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면 다음 두 명제는 이미 동치여야 한다.
p: 출산율이 저하되고 있다 |
q: 출산율이 저하되고 있다. 출산율 저하의 주된 원인은 여성에 있으며, 여성에게 압박을 가하여 출산율을 끌어올려야 한다. |
q에는 p에 담기지 않은 전혀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었다. 따라서 이 두 명제가 동치일 수 없다는 것은 누구라도 안다. 만일 p와 q가 동치라면 다음도 동치여야 할 것이다.
p: a는 여성이다. |
q: a는 여성이며, 그 자체로 문제적인 존재이며, 이 문제적인 존재는 억압해야 한다. |
위와 같은 개념 이해 원리는 당연히 합당하지 않다. 그런데 지금 페미니스트 집단은 이러한 논리를 펴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집단은 출산율이라는 개념에 애초 이러한 부정적 평가가 내재됐다고 주장하지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출산율과 출산율 하락에는 애초 가치평가적인 요소가 없다. 출산율이라는 개념을 그대로 두더라도 아래와 같은 규범적 주장이 모두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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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
a |
출산율 하락은 기후위기 타파에 좋은 일이다:
최근 출산율이 하락하고 있다. AI 등의 발달로 잉여노동력이 늘어날 가능성도 크다. 게다가 개인이 의식과 노력으로 줄일 수 있는 탄소배출량은 한계가 있다. 현재의 기술 수준을 기준으로 할 때 새로운 개인이 태어나지 않는 것이야말로 탄소배출을 줄이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러므로 출산율 하락은 이후에 매우 좋은 일로 판단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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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출산율 하락은 윤리적으로 타당한 일이다:
현재 출산율의 하락은 이후 기술발달로 인한 노동력 잉여 상황, 기후변화로 인한 삶의 비용 증가, 점점 불안정해지는 국제질서 등 후세대의 삶이 힘들어질 것을 감안한 윤리적 결정들이 모여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러한 윤리적 결정의 주체는 남성과 여성 모두 포함된다. 즉 출산율 하락은 윤리적으로 타당한 결정들이 모여 나타난 결과이며, 출산율 하락에 영향을 미친 개개인들은 그런 타당한 윤리적 결정들을 내렸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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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
출산율 하락을 문제삼는 것이 문제다:
출산율 하락은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의 발달에 의해, 개인의 의식적인 윤리적 선택 이외의 여러 문화적 변화나 여건들에 의해서도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출산율 하락에 의한 노동력 부족 등의 문제는 인공지능 및 로봇기술의 발전, 우리 사회에 협동적인 이민 노동력을 받아들임으로써 대처할 수 있다. 출산율 하락의 문제 대부분은 출산율 하락에 맟줘 사회의 구성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고집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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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현상을 사실적으로 기술하는 것은 그 현상에 대한 가치상의 평가, 규범적 평가, 개별 주체에 대한 평가귀속과는 무관하다. 즉 출산율 개념 자체에는 출산율이 하락하는 현상이 부정적이라는 가치상의 평가나, 출산을 하지 않는 것은 그르다는 규범적 평가가 내포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그러한 평가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하는 주체를 지목하는 것 또한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페미니스트 진영은 왜 출산율을 쓰지 말고 출생률이라는 개념을 쓰라고 하는 것일까? 이는 페미니스트 진영의 특성인 이념적 자유연상 때문이다.
이들의 페미니즘적 자유연상에 따르면 출산율 하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사고하게 된다.
출산율 하락에 대한 페미니즘의 자유연상 논리 |
▶'출산'은 아기를 낳는 것이다. |
▶아기를 물리적으로 낳는 것은 여성뿐이다. |
▶여성이 출산에 대하여 오롯이 책임을 지는 의사결정자이다. |
▶출산율 하락은 나쁜 것이다. |
▶출산율 하락에 대한 타당한 대응은 출산율 자체를 끌어올리는 것 뿐이다. |
▶따라서 ‘출산율’이라는 개념을 쓰는 것 자체가 나쁜 현상에 대하여 오롯이 책임을 지는 유일한 주체인 여성에게 비난과 압박을 가하여 출산율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
이러한 자유연상은 터무니없지 않은가? 그런데 학자, 기자, 법조인, 정치인, 논객과 같은 오피니언 리더들이 왜 이처럼 터무니없는 주장에 동조하는 것일까? 지성적으로 사고하지 않고 그저 주류영합적인 사고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러한 이념적 자유연상에 기초한 이의제기는 옳은 것이므로 언어생활의 상당부분을 고쳐야 한다는 당위가 참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어떤 사회가 될까?
페미니스트와 같은 이념집단은 언제나 이를 지배전략으로 사용할 것이다. 이들은 어떤 개념에 대하여 자신들만의 자유연상을 제시한 후 그 개념을 사회구성원의 언어생활에서 배제하고 전혀 다른 개념을 사용하도록 압박을 가한다. 이는 사람들의 언어생활의 자유를 자의로 축소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점점 더 많이 받아들여질수록 이들은 언어생활을 지배하는 권력을 획득해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고,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할 것이다.
지난 수년 동안 페미니스트 진영이 여성혐오라는 개념을 자의적으로 규정한 후 우리사회 구성원들의 언어생활에 가한 통제와 압박을 떠올려보라. '출생률'이라는 신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곳도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라는 페미니스트들이 장악한 조직이다.
지금도 페미니스트와 PC주의자들은 성평등 언어사전을 보급하고, 성차별 언어, 혐오표현 리스트와 같은 금지의 목록을 끝없이 만들고 있다.
국가권력이 신어사전을 만드는 이유가 지배이념을 강제해 전체주의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듯, 이념집단의 언어지배 전략 또한 전체주의적 목적 면에서 동일하다.
그러나 국가권력이 주도해 언어를 통제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받아들여지 않는 반면, 이념집단들의 통제 행위는 본질을 알아보고 경계심을 갖기가 쉽지 않다. 많은 지자체가 이미 조례에서 '출산'을 '출생'으로 바꿨다. 행정부의 인사들은 저출산 대신 저출생, 출산율 대신 출생률이라 부르며 올바른 언어사용인양 뽐을 낸다. 심지어 입법부는 이러한 이념행위에 동조하며 법제화 시도까지 하는 상황이다. 이념집단에 휘둘리기에는 여야, 진보보수, 좌우가 따로없다.
이념집단은 언제나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것보다 개념의 교정에 집중한다. 실제적인 문제에 관해 참과 거짓을 따지지 않고 언어생활을 통해 은밀하게 이데올로기를 관철시키려 한다.
'출생률'을 사용하면 여성에게 친화적이며 정의에 민감한 사람이 되고, '출산율'을 고수하면 반여성적이며 정의에 민감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압박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념적 자유연상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합리적 논증대화란 불가능하다. 출산율 숫자를 언급하면서 출생률이라고 부르는 오피니언 리더 중 누구도 자신의 비논리적 언어사용의 합리성을 논증을 통해 입증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점점 더 많은 지식인들이 출산율 대신 출생률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비논리가 논리를 이기고, 이념이 합리와 과학을 집어삼킨 반지성 사회의 모습이다.
이러한 현실을 보면서 다시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결론은, 페미니즘은 우리 사회의 반지성을 강화하는, 해악이 되는 이념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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