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당선된 미국의 대선과, 상당수 젊은 남성층이 보수정당을 지지한 한국의 대선을 두고 '극우'세력의 부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나는 '극우'라는 딱지붙이기에 심취한 진보좌파 진영의 당파적 지식인들과, 이에 숙고없이 편승하는 비당파적 지식인들 모두를 한심하게 여긴다.

그들의 당파적 여론몰이와 담론장의 왜곡이 결국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과 분노를 부추겼다. 그럼에도 한 번도 자신들의 행위를 돌아보지 않았고 지금도 일관된 태도로 남성청년 극우몰이를 하고 있다. 지적으로 게으르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집단이다. 특히 당파적 언론인들의 해악이 크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친민주당 성향의 좌파 언론들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원색적인 비난을 보면 과연 일국의 대통령이 쓸 수 있는 표현인지 놀랄 때가 많다.

트럼프와 트럼프 정부의 인사들은 무도하고 무례하다. 역대 최연소 여성대변인은 캐나다의 총리를 '주지사'라 칭한다. 정부의 공식 브리핑에서 주권국가의 수반을 멸시한다. 대통령이 그렇게 하니 대변인도 똑같이 한다.

지난 6월, 이란의 핵시설에 벙커버스터를 투하한 대대적인 공격 후 트럼프와 그의 국방장관 헤그세스는 나토회견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미국의 대 이란 핵시설 파괴작전이 완벽하게 성공했음을 발표하는 회견이었다. 질문하려 손을 드는 기자를 향해 트럼프 대통령은 "가짜뉴스 CNN"이라며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라는 듯 좌중은 웃었고 CNN의 기자도 개의치 않고 질문을 던졌다.

CNN의 대표기자 케이틀린 콜린스를 지목하며 거친 언사를 하는 트럼프 대통령


트럼프는 특히 CNN과 뉴욕타임즈에 대한 분노가 컸다. 그 매체들이 공습 후 미 국방정보국(DIA)의 초기 평가서를 근거로 트럼프의 발표에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는 CNN, 뉴욕타임즈, NBC를 '끔찍하고 병든 언론'이라고 했다. 세계가 보고 있는 국제기구의 회견장에서, 해당기자들과 소속언론사를 노골적으로 모욕했다.

헤그세스 국방장관도 트럼프 못지않게 좌파언론에 적대적이다. 나토정상회담에서 돌아와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이 펜타곤에서 합동기자회견을 열었는데 이 날에도 헤그세스 국방장관과 여성기자 사이에 작은 설전이 벌어졌다. 나토와 펜타곤에서 연이어 설전을 벌인 기자들은 NBC의 켈리 오도넬과 CNN의 케이틀린 콜린스로 둘 다 매체를 대표하는 여성기자다.

NBC, CNN, 뉴욕타임즈를 면전에서 끔찍하고 병든 언론이라 말하는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과 헤그세스가 나토와 펜타곤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을 몰아붙인 명분은 '반대편(트럼프 정부)에 대한 증오에 눈이 멀어 애국용사들이 이뤄낸 성취마저 부정하는 좌파언론들'이었다.

트럼프는 '작전에 참여한 조종사와 통화했는데 국내 (좌파)언론들의 보도를 보고 상처받았다'고 했다. 헤그세스는 '그 작전에 참여한 조종사들은 다시는 가족을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 길에 나섰다'며 '36시간을 쉬지않고 비행해 공중급유를 받아가며 목숨을 걸고 사상 초유의 작전을 완수해낸 조종사들에 대해 먼저 감사를 표하라'고 공세를 폈다.

대중은 왜 무도한 이들에게 열광하는가?

트럼프와 헤그세스의 기자회견을 보면 무례하고 공격적인 그들의 언사에 시선이 갈 수밖에 없다. 그들의 퍼포먼스는 매우 강렬하고 자극적이다. 지지자들은 얄미운 세력에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그것도 너무 시원하게 해주니 환호한다.

트럼프와 헤그세스는 대중들의 이러한 정서를 잘 알고 이용한다. 그는 국방부의 초기평가서는 작전 직후에 나온 것으로 신뢰도가 낮다는 점이 명시되어 있다는 것, 작전 성공과 실패 가능성 둘 다를 언급했는데 뉴욕타임즈와 CNN 등은 작전 실패 부분만을 발췌해서 보도했다는 점을 집중 공격했다. 또한 국방부 내 민주당 지지세력이 평가서를 의도적으로 유출한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트럼프와 헤그세스가 이들을 '끔찍하고 병든언론'이라 모욕하는 것에는 이러한 보도태도가 명분이 됐다. 사실을 보도한다고 하면서 공정성을 잃고 당파적으로 유리한 대목만을 발췌하는 것, 매우 크고 중요한 군사작전이었음에도 작전 자체에 대한 취재나 군인들의 안위보다 트럼프의 실패를 부각하는 것에 집중, 여성조종사는 왜 언급하지 않느냐는 비본질적 공세 등이 오늘날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 주류 좌파언론들의 수준이라는 것이다.

대중들이 트럼프를 지지했던 이유는 나라가 잘 되는 것보다 잘난척이 우선인 사람들(미국의 정체성 혼란), 늘 위에서 내려보는 태도로 대중을 가르치려 드는 사람들(엘리트주의), 별 것 아닌 일을 들고나와 일상의 질서를 파괴하는 사람들(위키즘)에게 피로와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고, 이들을 대표하는 집단이 바로 위 매체들이었다.

뉴욕타임즈의 발췌보도를 공격하는 헤그세스

헤그세스는 특히 뉴욕타임스와 같은 좌파언론들의 본능은 정치적 목적(반대진영의 실패)이라 주장한다.

'우리 정부는 인종과 성별에 집착하는 짓은 더이상 하지 않겠다'

헤그세스와 합참의장의 공동기자회견에서는 한 여성기자가 "왜 작전에 참여한 여성 조종사들은 호명하지 않느냐? 당신이 보낸 초기 메시지에서 단지 남자 병사들(Boys)만 축하하고 있다"며 헤그세스를 공격했다. 여성기자는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 질문을 접한 헤그세스는 먼저 조소로 응답했다. 못마땅한 얼굴로 쳐다보는 여성기자에게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제법 길고 신랄한 반격을 했다. 오히려 여성기자가 헤그세스에게 판을 깔아준 모양새로 보였다.

조종사들은 모두 영웅이며 더 많은 여성폭격기 조종사를 원한다고 답하는 국방장관

미국 국민들 아무도 조종사 성별문제를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하는 헤그세스.

워키즘 진영에 대한 대중들의 반감을 잘 이용한다.

바이든 정부의 국방부가 성별이나 트렌스젠더 같은 워키즘에 집착하던 정책을 비판하며 우리는 더이상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헤그세스 국방장관


헤그세스는 먼저 동석한 합참의장이 이미 여성 조종사에 대한 감사표현을 했음을 지적하면서, 자신 또한 여성 조종사들을 영웅이라고 생각하며, 더 많은 여성 폭격기 조종사를 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 국민들 누구도 조종사의 성별에 관심이 없고 작전에 참여한 모든 조종사들은 영웅이다. 그런데 이 부서(맥락상 민주당 시절의 국방부)의 인종과 성별에 대한 집착이 우선 순위를 바꿔놓았다.
나는 미군장병들을 지칭하는 통상적 언어표현이 문제라 생각하지 않으며, 당신같은 사람들(좌파, 민주당 등 워키즘 진영)이 이를 문제삼는다면 오히려 그러한 표현을 고수할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그런 짓(워키즘 집착)을 하지 않는다고 숨도 쉬지 않고 반박했다.

여성기자는 헤그세스의 발언 내내 불쾌한 얼굴이었다.

나는 어쨌든 저들보다 우월하다는 착각

미국을 대표하는 주류 언론사이며 세계적인 공신력을 가진 매체들, 그 매체를 대표하는 기자들의 수준을 보면 저들도 별게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트럼프라는 무도한 권력에 맞서는 정의로운 나라는 역할에 빠져 기자로서 기본적인 의무에 소홀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인데 기자들이 이데올로기에 경도되고 당파적 편향성이 강할수록 저널리스트로서 능력과 윤리의식은 떨어진다.

미 국방부 산하의 국방정보국(DIA)에서 작성된 초기 평가서는 폭격 직후 초기에 나온 것으로 낮은 확신하에 작성되었으며 작전의 성공과 실패 가능성 둘 다를 언급했다고 한다. 그런데 뉴욕타임즈와 CNN은 작전실패 부분만을 발췌해 공세를 편 것이고, 분노한 트럼프와 헤그세스는 부도덕하고 병든 언론이라는 맹공을 퍼부은 것이다.

이에 대한 기자들의 대처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트럼프와 헤그세스가 무례하고 무도한 것과 별개로 이들은 언론인으로서 불공정한 행위를 당파성으로 돌파하려 했다. 미국의 언론사는 당파성을 숨기려 하지 않지만 사실관계와 공정성을 기본으로 한 후 당파적 견해를 피력하는 것과, 당파적 견해를 포장하기 위해 사실관계를 취사선택하는 것은 다르다.

그들이 '(우리가 취사선택한게 사실이라고 해도)어쨌든 보고서가 발행된 것은 맞잖아? 보고서 존재는 부인 못하지? 실패가능성이 적시된 건 맞으니 우리가 없는말 한 건 아니잖아?'라고 변명하는 순간 주류 미디어의 수준은 구차해지고 보도에서 사실관계의 절대적 지위는 당파성 다음으로 낮아진다.

사실관계의 취사선택을 비난하자 어쨌든 초기보고서였지만 존재는 인정하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기자


헤그세스 장관에게 여성조종사를 칭송하지 않느냐고 비판한 여성기자도 구차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녀는 질문에 굳이 '초기 메시지'를 언급한다. 국방장관이 작전성공후 작전에 참여한 조종사들에게 경의를 표할 때 'boys'라는 표현을 썼기 때문이다. 여성 기자는 국방장관이 'boys'라는 표현을 초기 환영사에 한 번 쓴 것을 매우 중대한 과오로 다루고자 했다. 그러나 지속적인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초기 메시지'로 국한했다. '어쨌든 너는 그말을 한 번은 했잖아?' 저널리스트로서 의무가 아닌 당파적 정념에서 나온 그 태도가 이미 구차한 행위다.

여성조종사를 칭송하지 않느냐고 공격하는 여성기자

폭격작전 후 국방장관이 조종사들에게 boy라는 표현을 쓴 것을 문제삼는 여성기자

국방장관은 단지 흠집내기를 위한 사실관계의 취사선택을 꼬집으면서 그런 공세를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준비된 답변처럼 쉴새없이 몰아붙였다.

한국의 진보좌파 언론은?

미국 주류 미디어 기자들의 질문과 논쟁 수준을 보면서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그토록 추앙하고 일방적으로 받아쓰는 미국 수준도 별반 다를게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뉴욕타임즈와 CNN이라는 창으로만 미국을 바라보다 대선 예측에 실패하고는, 트럼프를 증오하고 미국 국민들을 비난하던 몇몇 한국 지식인들도 생각난다.

뉴욕타임즈와 CNN을 맹신하는 한국의 진보좌파 언론도 위 기자들과 똑같은 행동을 한다. 대표적인 매체가 한겨레다. 한국은 특히 페미니즘에 빠진 여성기자들이 비윤리적 행동을 많이 한다. 취사선택, 선동, 당파적 전문가만 인용, 사실왜곡을 하면서도 정의로운 저널리스트라 착각한다. 그러한 사례는 매우 많다. 한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2019년 한겨레는 성매매 여성들에게 최대 2천여만원을 지원하는 정부정책에 대해 남성 커뮤니티 중심으로 '창녀연금' 등 혐오발언이 쏟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사에 남성커뮤니티 이름들까지 명시했다. 그러자 해당 커뮤니티에 그러한 표현이 없었다는 사실을 검증한 글이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기사를 쓴 기자에게도 항의메일을 많이 보냈다고 한다.

이러한 반응에 대해 기자는 해명성 글을 덧붙였는데 요지는 '창녀연금'이라는 표현은 없지만 '창녀'와 '연금'이라는 두 단어를 별개로 쓴 표현들이 있고, 연금이란 단어가 아닌 다른 표현도 본질적으로 같은 의미로 쓴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창녀'와 '연금'이라고 개별로 따옴표 인용을 하면 되는 것인데 기자는 '창녀연금'이라는 선정적인 단어를 굳이 '조합'해서 썼다. 그러면서 어쨌든 두 단어가 존재하는 건 사실이니 왜곡보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식으로 인용이 허용된다면 커뮤니티에 산재한 어떤 단어들도 임의로 조합해서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일도 문제가 아니게 된다. 단어들을 임의로 조합한 후 기자가 본질적으로 같은 의미이니 써도 된다고 하면 사실보도가 되는 것인가? 이것이 저널리즘 윤리에 부합하는 행위인가?

한겨레의 페미니스트 기자들은 그러한 보도를 문제의식 없이 해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저널리스트로서의 정체성보다 페미니스트 정체성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와 당파성 앞에서 사실관계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한겨레의 '창녀연금' 보도

'창녀연금'이라는 단어가 없다는 항의에 해명성 글을 덧붙인 한겨레 기자

해명으로 한겨레 기자의 사실관계 왜곡은 사실로 드러났다.

"왜 대중들이 진보에게는 더 가혹할까요?"

지난해 연말 <매불쇼>라는 유튜브 채널에 출연했다. 짜여진 대본 없이 자유로운 대화를 나눴다. 당시 주제는 한 유명 배우가 본인이 원하지 않던 상황에서 생물학적인 아버지가 됐고, 일각에서 평소 그의 친좌파적 행동에 대한 반감으로 도덕적 비난을 하는 사태에 대한 것이었는데, 사적인 영역에까지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분위기를 두고 다른 출연자가 내게 물었다.

"왜 대중들이 진보에게는 이렇게 가혹할까요?"

나는 이렇게 답했다.

"사람들이 탐욕보다 위선을 더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대중들의 이러한 반응은 진보좌파가 자초한 면이 크다. 그동안 좌파는 우파의 부도덕과 부패를 맹렬하게 비난하며 좌파 집권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좌파집단의 구성원들은 우리는 우파보다 도덕적이며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는 정의로운 집단이라는 도덕적 우월감을 내면화하고 있다.

그래서 설사 좌파진영에서 부패나 부도덕한 행위가 문제가 되더라도 더 부패하고 부도덕한 상대 진영을 기준으로 자신들의 행위를 가벼이 여기며, 대중이 우리에게 가혹하다는 원망을 하기도 한다. 절대적 기준으로 평가받아야 할 일을 상대적 기준으로 평가하며 집단적 도덕불감증에 빠진다.

그러한 태도는 대중들에게 더 큰 실망과 분노를 갖게 한다. 부도덕과 불의의 대안은 절대적인 도덕과 정의이지 상대적인 우월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도덕과 정의를 '상품성'으로 내세웠던 세력의 부도덕은 위선과 기만이라는 요인 때문에 더 치명적인 결함으로 작용한다. 그러한 반감은 어차피 똑같은 탐욕이라면 기만적인 탐욕보다는 정직한 탐욕쪽을 지지하는게 낫다는 결론으로도 이어진다. 적어도 정직한 탐욕은 인간의 본질적 욕망을 인정한다는 면에서 얼마간의 도덕적 면책을 해주기 때문이다.

대중을 원망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은 아니다. 실력과 수준으로 상대를 압도해서 인정받기보다 당파적인 집단 안에서 상대방의 수준낮음을 조롱하며 우월하다 여기는 착각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상대는 그러한 착각을 또 조롱하며 자신이 우월하다고 여긴다. 서로가 그러한 착각에 빠져 연명하니 도덕과 지성의 수준은 동반하락한다. 이는 사회 전체의 지적 도덕적 타락으로 귀결된다.

당신의 수준이 절대적인 차원에서 높아진다면 당신을 상대해야 하는 적 또한 수준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상대의 수준낮음을 조롱하기는 쉽지만 그것에 안주하는 순간 그게 바로 당신의 수준이 된다. 나의 실력과 수준을 비교대상 없이 그 자체로 높이려는 지성인을 보고싶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러한 지성인들은 당파적 활동에 빠지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오늘날 한국사회의 비극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