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의 아무말 기자수첩: '진짜 차별' 감별사들의 우왕좌왕
이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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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8 20:05 | 최종 수정 2024.01.12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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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의 아무말 기자수첩> 이준석 대표와 인요한 혁신위원장 사이에 영어논란과 인종차별 논란이 일자 <미디어오늘>에 기사가 보도됐다.
"[기자수첩] 이준석 전 대표 진짜 차별 발언은 따로 있다"라는 제목이다.
제목만 보고도 장슬기 기자가 썼을거라고 바로 짐작했다.
역시나다.
장슬기 기자는 미디어오늘의 대표적인 남성페미니스트이자 피씨주의자이다.
제목부터 전형적인 피씨주의자의 습성을 따른다.
'너희들은 모르는 숨은 차별을 간파하는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도덕적으로 우월한 나'에 대한 과시를 숨기지 못한다.
최근 이준석 대표와 인요한 위원장 사이에 벌어진 영어논쟁으로 피씨주의자들은 오락가락 혼란 중이다.
혼란스럽거나 잘 모르면 자신들의 이론이 애초 잘못된게 아닌가 점검하거나 가만히 있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그걸 참지 못하는 게 또 피씨주의자들의 특성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차별과 혐오를 발견하고 비난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이자 진영 내 생존의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장슬기 기자는 위 글에서 이준석의 영어는 상대방이 강자인 백인남성이기 때문에 소수자성이 없으므로 인종차별 행위로 규정하기에는 섣부르다고 한다.
남성은 강자이므로 남성에 대한 혐오는 존재할 수 없다는 피씨주의 페미니즘의 논리이다.
(관련글: [시리즈]’남혐은 없다’는 홍성수, 이나영, 정희진, 진중권 등에 대한 반론(1): 혐오표현의 정의를 다시 확인하며) 그렇다면 그동안 홍성수 교수류가 주장하던 차별과 혐오의 '맥락'은 무엇인가? 홍성수 교수는 무슬림이 다수인 사회에서 기독교인은 소수자이기 때문에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불변의 속성이 아닌 사회적 상황에 따라 소수자성은 가변적이라는 논리다.(그러면서도 남성혐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들에 대해 틀렸다고는 하지 않는다.) 그들이 주장하는 가변적 맥락에 따르자면 한국인이 다수자인 나라에서 외국인에 백인은 소수이고, 인요한 위원장은 한국에서 지역차별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전라도인임을 강조하는데 소수자가 아니라는 근거는 무엇인가? 백인에 남성이면 어떤 상황에 처하든 강자이고 다수자라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인가? 아니면 인요한 위원장 개인의 상황을 판단할 때 성공한 백인 남성이기 때문에 해당이 안 된다는 것인가? 그렇게 개인적 상황에 따라 다 소수자성이 판별된다면 애초 남혐은 존재없다는 말은 왜 지지받을 수 있으며, 집단적 정체성에 따라 혐오가 성립된다는 주장은 무엇이며, 개별적 소수자성은 누가 판단하는가? 맥락은 왜 따지는가? 장슬기 기자의 기자수첩 글 전체가 논리도 논증도 없는 아무말 대잔치에 해당한다.
장슬기 기자는 인요한 위원장이 이준석 대표의 아버지에게 연락한 것이 어린 정치인에 대한 차별행위이며, 환자라는 표현이 환자에 대한 부정적 취급이라 아픈 사람에 대한 혐오발언이라는 주장까지 편다.
이렇게까지 논리를 논증없이 비약시키면서 하는 말이,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하더라도 기자뿐 아니라 유권자들도 해당 정치인의 발언을 글자 그대로 믿지 않는다."고 한다.
유권자가 아니라 장슬기 기자 자신이 제멋대로 타인의 발언을 해석하고 규정한다.
인위원장이 이준석 대표의 아버지에게 연락한 행위가 "소위 ‘어린 것이 뭘 아느냐’는 쪽에 가깝다"는 것도 장슬기 기자 개인의 악의적인 해석이다.
타인의 행위를 차별이냐 아니냐, 혐오냐 아니냐라는 기준으로밖에 해석하지 못하는 피씨주의자들의 행태는 병리적인 수준이다.
병리적이라는 나의 표현과 해석 또한 환자와 질환에 대한 부정적 표현이므로 장슬기 기자의 논리에 따르면 혐오발언이 된다.
기자가 혐오주의자 딱지, 차별주의자 딱지를 붙이는 완장놀이에 빠져 혐오차별 감별사가 되면 이런 아무말 대잔치 기자수첩을 쓰게 된다.
미디어오늘은 데스킹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것 같다.
장슬기 기자는 남에게 그런 혐의 씌우기 전에 사적린치 옹호한 디지털교도소 기사에 대한 반성을 먼저 했으면 한다.
장슬기 기자는 잡고보니 N번방 운영자가 개설했던 신상털이 린치 사이트인 디지털교도소를 정의구현인듯 찬양하는 기사를 썼다가 (스스로 망신이라고 생각할지는 알 수 없지만) 망신을 당한 바 있지만 이에 대해 반성한 바가 없다.
여기자라는 말은 성차별이라 쓰면 안된다는 기사를 쓰면서 본인은 여기자 수상 기사를 쓰기도 한다.
이것이 피씨주의자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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