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 자원의 사적 도구화: [결혼지옥] 고스톱 부부편 사례
이선옥
승인
2022.12.24 21:26 | 최종 수정 2024.06.06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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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솔루션 프로그램인 <오은영 리포트: 결혼지옥>이 최근 시청자들의 항의와 제작진의 사과, 오은영 박사의 입장발표로 논란이 되더니, 출연자가 실제 아동학대혐의로 신고를 당해 경찰조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송출연을 신청한 일이 뜻밖의 논란으로 번지고 급기야 형사처벌의 위험에까지 놓인 것이다. 출연자와 제작진 모두 상상도 하지 못한 상황전개에 당황하고 있다.
제작진과 오은영 박사가 각각 사과를 포함한 입장문을 냈지만 대중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명백한 아동학대행위를 제작진이 인지하지 못하고 방관했으며, 전문가인 오은영 박사는 오히려 학대의 가해자인 아빠를 연민하는 태도로 옹호했다는 것이다. 관찰예능 프로그램의 최종 방영분은 오랜기간 촬영한 영상 중 고작 몇 십분을 편집해서 내보낸다.
그것도 제작진이 의도한 스토리 전개를 위해 편집된 장면들의 연속이므로 특정 대목만을 가지고 곧장 학대의 혐의를 단정하는 일은 섣부르다. 아무리 시청률이 중요한 제작진일지라도 아동학대를 인지하고도 구조행위를 안 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전문가까지 포함돼서 오랜 기간 관찰하고 분석한 수많은 제작진의 눈에 학대행위로 판단되지 않았다면 두 가지 경우를 추론할 수 있다.
제작진이 아동학대에 대한 인지가 낮거나, 처벌이 따라야 하는 학대행위라 판단하지 않을만한 상태였을 수 있다. 방송제작에 참여하는 성인들, 더구나 아동상담 전문가를 포함한 제작진이 한국의 보통 어른이라면 가졌을 상식적인 보호자의 역할을 일부러 방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론이 좀 더 합리적이다. 만일 아이에 대한 학대행위가 심각해 긴급하게 구조가 필요한 상황이었다면 제작진도 출연자도 촬영을 계속 진행하여 방송으로까지 내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악의적 단정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처단할 악마를 만들어내야만 사안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은영 박사는 아이 아빠의 행동에 대해 분명하게 부적절함을 지적하고 행동변화를 요구했다.
본인의 의도가 아닌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도 깨우치도록 했다.
그러면서도 비혈연관계의 양육자가 많아지는 요즘, 아이에게 스스럼없이 대하는 것이 친부모처럼 양육하는 길이라는 생각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음을 이해하고 그 의도까지 나무라지 않았다.
이해는 하되, 관용할 수 없는 지점을 분명히 밝혀주는 것은 전문가로서 충분히 취할 수 있는 태도이다. 미숙함과 무지, 과잉의욕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고 판단한 것을 모두 성적 학대라 규정해서 성범죄자를 만드는 것이 전문가로서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
무엇보다 해당 프로그램은 출연자들이 변화를 통한 해결을 원해 전문가의 개입을 바라는 것이므로 당연히 형사적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
다만 논란이 된 결혼지옥 편에서 내가 문제라고 느낀 것은 다른 대목이다. 아이의 엄마는 이미 남편을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신고한 이력이 있다. 방송에서 스스로 이를 밝혔다. 남편 또한 그녀의 신고로 당황했다고 말한다.
아내는 자신의 행위를 문제의식 없이 가볍게 취급하고 있다. "처벌을 원해서 경찰에 신고한 건 아니다. 남편을 강제로라도 교육받게 하려고 한 것이다"
자신의 자녀를 학대했다고 신고까지 한 남편과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방송 출연까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위의 말처럼 남편의 학대행위가 계속돼 아이와 격리시킬 만큼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스스로 남편을 훈육하기 위해 공권력을 사적 도구로 이용했음을 밝혔다.
남편한테 아동학대교육을 받게 하려고 경찰에 신고를 했으니 처벌은 하지 말라고 한다. 공권력과 행정력은 긴급하게 보호가 필요한 시민에게 우선적으로 발동되어야 하는 공적 자원이다. 그래서 공권력인 것이다.
경찰신고는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심각한 행위이다. 경찰신고, 조사, 학대판정, 가해자 교육.. 모두 피해자 보호를 위해 설계해 놓은 제도일진데, 어떤 제도든 이를 이기적으로 이용하고, 그것이 왜 동료시민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위인지도 모르는 채 악용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악용자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는 제도가 함께 만들어져야 한다.
119에 장난전화를 하거나, 거짓으로 사고를 신고하거나, 내 집 문이 잠겼다고 신고해서 문을 따달라고 하는 등의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이치와 같다.
해당 여성은 방송 후 실제 신고가 들어가서 남편이 경찰에 입건되는 상황이 오니 처벌을 원하지 않는데 왜 타인이 신고를 하는지 당황스럽다고 한다.
그렇다면 애초 경찰에 신고할 게 아니라 가족상담을 받거나 남편을 설득해 교육을 받도록 하거나 하는 가족 내 해결책을 찾았어야 할 일이다. 형사처벌은 매우 심각한 일이다. 더구나 이 여성은 가정폭력상담소에 일하는 사람이다.
나름의 전문성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 직업인인데, 공권력을 자신의 남편 훈육을 위해 사용하는 저런 마인드의 상담사가 가정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내담자에게 어떤 식의 솔루션을 줄 것인가? 한국의 성폭력상담소, 가정폭력상담소 상담사들의 자질과 전문성은 대대적으로 점검되어야 한다.
피해자 지원에 대한 국민의 공감대 덕에 상담소 운영에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고, 이를 운영하는 여성단체들은 점점 더 많은 예산을 요구하는데 정작 전문가라는 상담사들의 자질은 제대로 검증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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