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사건반장의 K- 멍석말이

거대 방송국 워터마크를 단 이슈레카

이선옥 승인 2024.05.26 19:09 | 최종 수정 2024.05.27 01:22 의견 0

이선균 배우가 목숨을 끊은 후 경찰의 조사행태, 언론사들의 포토라인 세우기, 수사기관 앞 뻗치기와 생중계 등 선정적 보도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그러나 또 다른 유명인이 전국민의 도덕제의(祭儀)에 제물이 되는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제 누군가 죽고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자는 자성과 책임론으로 끝나는 상황마저 반복적이다.

지금 모든 뉴스가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김호중 사건에 대해 수사기관의 수사 내용 흘리기와 언론사들의 과도한 출두 중계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없다. 오히려 언론접촉을 피하려 한다는 보도에 김호중을 향한 비난은 더 거세졌다. 대중들 또한 김호중의 처신에 대한 분노에만 집중해있다.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나 피의자에 대한 미디어의 과도한 노출은 그간 계속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수사기관은 피의사실 공표 금지를 더 엄격하게 지키겠다고 약속했지만 유명인 앞에서 이러한 다짐은 매번 무력해진다.

대중들은 자신이 지지하거나 연민을 느끼는 사람에 대해서는 피의사실 공표와 언론보도에 민감하게 대응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사기관과 언론의 행태에 동조한다.

흉악범죄좌의 신상공개는 절차에 따라 심의를 받는 보호장치가 있는데, 흉악범죄도 아니고 때론 피의자 신분도 아닌 이들이 단지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대중 앞에 발가벗겨진다.

보도윤리나 지침 같은 것은 고려하지 않은 언론사와, 피의자에 대한 보호보다는 유명인이라는 점을 내세워 실적을 과시하려는 수사기관의 행태가 결국 한 사람의 인격을 말살하고 심지어 죽음으로 내몬 것이 바로 얼마 전 일이다. 이선균 사태에서 일었던 우리사회 자성의 목소리는 다 어디로 갔을까.

이러한 현상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면 어떠한 사건이 우연히 비극으로 이어지지 않을지라도 다른 사건에서 다시 비극은 이어질 것이다.

JTBC 사건반장의 K- 멍석말이

JTBC 사건반장은 그 가운데에서도 해악이 되는 방송이다. 이 프로그램이 문제적인 이유는 거대 방송국이라는 공신력을 배경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건반장이 레카 유튜브와 다른점은 거대 방송국 워터마크를 달고 있다는 사실밖에 없다.

한 예를 들어보자. 불과 몇달 전까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고 현재도 재판이 진행중인 사건이 있다. 한 특수교사가 유명인인 주호민 작가의 장애아이를 학대한 혐의로 피소가 됐다. 당시 서이초 교사의 죽음으로 교사에 대한 학부모들의 '갑질'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고 그 불똥은 주호민이라는 유명 작가에게 튀었다.

모든 정의로운 분노가 주호민 작가에게로 향했고, 학대혐의를 받는 피의자는 피해자가 되었다. 이 사건을 보도하던 모든 언론이 갑질하는 가해 학부모와 억울하게 당하는 피해 교사의 구도를 단정한 채 보도했다.

특히 사건반장은 "주호민 아들, 여학생 앞서 바지내려"라는 자극적인 자막을 달았다.

사건반장의 주호민작가 사건 보도


사건반장은 장애아동의 여러 행동 중 '여학생 앞에서 바지를 내렸다'는 선정적인 사례를 내세웠다. 그 덕에 당시 정신연령이 5세에 불과했던 장애 아동은 성범죄자라는 낙인을 얻었고 부모와 함께 온갖 비난과 악플에 시달렸다.

사건반장의 보도는 아동, 더구나 장애를 가진 아동의 인권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이 보도 사진을 다시 올리는 것마저 조심스러운게 상식일진데 사건반장의 윤리와 상식은 뒤틀려있다.

주호민 작가는 실제 여러 매체들의 보도 가운데 사건반장의 이 보도장면을 꼽으며 '이 자막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며 탄식했다.

장애인인권단체도 장애아동에 대한 무분별하고 반인권적인 보도행태를 비판하며 일부 매체를 고발했다.

평소 같으면 '약자'인 장애아동에 대해 부적절한 보도를 했다며 사과할 만도 한데 사건반장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 똑같은 상황이 와도 같은 선택을 하겠다며 당당하게 입장을 발표했다.

"다시 같은 상황에 직면해도 같은 선택을 하겠다"는 사건반장

사건반장의 진행자는 자신들은 그런짓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짓이란 장애아동에 대한 혐오보도를 말한다. 사건반장 제작진이 규정하는 장애아동 혐오보도란 어떤 것일까?

사건반장은 학대혐의로 피소된 상대 교사와 비교해 보도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불가피했다고 한다.

장애아라는 사실, 아동의 나이 등 중요한 사실관계를 생략한 채, 단지 아이의 아버지가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특정이 될 수 있는 아빠의 실명을 공개하며 '여학생 앞에서 바지내려'라는 제목을 쓰는 것은 '그런짓'에 해당하지 않는가? 그것이 공정의 완성인가?

현재 강형욱 사건에도 사건반장은 레카의 임무에 열심이다. 자신들의 연락을 받지 않는다며 입장발표가 늦어질수록 중립기어는 헐거워진다는 말을 인용해 강형욱을 연일 압박해왔다. 여러날동안 자극적 제목으로 앞장서서 강형욱 '장사'를 했다.

이제 강형욱 측의 입장이 나온 후 사건반장의 채널에는 신랄한 비난의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강형욱에게 입장발표를 압박하는 사건반장

-자, 이제 jtbc 사건반장팀 당신들 해명 좀 들어봅시다.

-공론화와 마냐사냥은 사건반장이 시작인것 같은데...?

-시사프로랍시고 하는짓은 온갖 유튜브 렉카짓하고 연예인이나 유명인 쫓아서 묻어버릴 생각 뿐

사건반장 채널에 시청자들의 비난댓글이 달리고 있다.

오늘도 유명인들의 사건사고 소식은 끝이 없다. 내일은 또 다른 누군가가 K-멍석말이형에 처해질 것이다.

우리사회는 많은 죽음들에도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거대 방송사의 타이틀을 달고 레카 유튜버와 다름없는 행동을 하는 사건반장과 같은 프로그램이 지속되는 한 앞으로도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막대한 자본과 우수한 인력들로 구성된 거대 방송사가 레카 유튜버와 다를 바가 없다면, 단지 좀 더 유명한 법조인들이 패널로 등장해 유명인의 형량을 예측하고,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실어나르고, 비난을 부추기고, 유죄를 추정하는 노릇을 한다면 그들이 주장해 온 미디어의 책임과 공적 기능이란 무엇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권력으로부터 언론의 자유를 지켜달라거나 공익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국민의 보호를 호소할 자격이 그들에게 있을까?

자성의 목소리마저 집단적 도덕제의의 마무리로 배치되는 제의의 일부가 되어버린 오늘의 한국사회, 그 가장 큰 책임은 언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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