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으로 성숙한 사회는 어떠한 표현이나, 표현물 안에 등장하는 묘사를 근거로 해당 영역에 대해 흑과 백, 선과 악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실제 해당 영역이나 집단의 명예는 그들이 현실 세계에서 부정적 행위를 저질렀을 때 사회구성원들이 갖게 되는 것이지, 대중문화 속 표현 때문에 일어난 오해가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

빛나는 창작물은 관용의 토대 위에서 만들어진다

수년 전 개그콘서트에서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는 캐릭터가 인기를 얻었다. 학생운동은 쇠락한지라 머리띠 하면 노동운동이 연상되던 때였다.

당시 노조활동을 하는 주변 친구들이 무척 불쾌해했다. 민주노총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당장 개콘에 항의해 코너를 없애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자신이 젊음을 바쳐 헌신한 가치와 이를 상징하는 조직이 희화화되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개콘은 이런 진지한 비난을 대비한 유행어도 만들어뒀다.

"개그는 개그일 뿐 따라하지 말자"

당시 노동운동 진영에 발을 걸치고 있던 나는 친구들과 이런 얘기를 나눴다.

'사람들 노동운동에 아무도 관심 없는데 그렇게라도 존재를 일깨워주면 고마운 거 아닌가, 또 노조가 개그소재가 좀 되면 어떤가, 우리들끼리 숭고한 것보다 대중 속에서 친근한 놀림감이 되는 게 낫지, 개콘에서 놀린다고 그걸로 민주노총 놀리는 사람은 없다. 민주노총이 놀림받을 짓을 했을 때 개콘의 놀림이 소환되는 거다.'

지금도 내 생각은 같다.

고귀함은 표현물에 대한 단속과 압박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어떠한 표현이 그 대상이 되는 존재에 대해 모든 것을 규정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최근 불교계가 자신들을 부정적으로 표현한 장면 때문에 드라마의 폐지까지 요구한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법당에서 도박판을 벌이는 극 중 장면 등이 문제가 됐다.

‘조계종본사주지협의회’는 “표현의 자유라는 허울로 회피하기에는 그 정도가 지나치게 과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수많은 불자들과 국민들이 겪는 정신적 피해와 불편함은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고 있다”며 강도 높은 성명을 발표했다.

출처: 한겨레

출처: 한겨레

나는 드라마 속 도박 장면 때문에 불교에 대해 나쁜 인식을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조직폭력배들처럼 싸우던 옛 뉴스 속 스님들의 모습이 부정적인 이미지로 남아있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의 훌륭한 스님과 신도들의 존재를 모르지 않으며 불교의 가르침에 대해 오해하지도 않는다.

무균사회를 향한 권리의 각축장

개인들의 권리의식이 강해질수록 구성원들이 만든 집단적 단위의 권리의식 또한 강화된다. 이해관계는 점점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히는 반면, 현명하게 해결된 경험은 축적되지 않는다.

저마다 나(우리)에 대한 어떠한 부정적 표현도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로 장벽을 쌓고, 상대방에게 가장 타격이 되는 극단적 조건의 수용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사례들만이 축적되니 마치 관용은 무시를 자초하는 것, 손해를 보는 것, 불의를 용인하는 악덕으로 취급된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사례는 계속 반복되고 있다.

사례: 한 래퍼가 가사에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라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 대한산부인과의사회가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해당 가사가 산부인과와 여성들을 모욕하고 명예를 훼손했다고 생각했다. 래퍼와 방송 제작진 모두 사과했다.

사례: 방역 정국 당시 파업에 참여한 의대생들이 ‘당신 덕분에’ 챌린지 수어를 변형해 정부에 대한 항의로 사용한 것을 두고, 한국농아인협회가 수어 모독이라며 항의성명을 발표했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는 즉각 농인들께 상처를 드렸다며 사과했다.

사례: 여성 아이돌그룹 ‘블랙핑크’의 뮤직비디오에 간호사 코스튬을 한 멤버의 모습이 짧게 등장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이 표현이 간호사를 성적대상화 했다며 항의성명을 발표했다. 민주당의 여성청년 최고위원 박성민은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라며 소속사를 압박했다. 소속사는 사과문을 발표하고 해당장면을 삭제했다.

사례: 해마다 졸업식 이벤트로 유명한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유튜브에서 유행하던 ‘관짝소년단’을 패러디했다. 이 콘텐츠는 이미 세계적으로도 히트를 친 인터넷 밈이었지만, 한국에서 활동하는 유명한 흑인 방송인이 이를 인종차별행위라 비난하면서 여러 매체가 같은 견해를 표명했고 사과를 요구하는 여론이 일었다. 논란이 되자 학교와 학생들은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사례: 한 대형 항공사에서 자사의 유니폼과 유사한 제복을 입고 선정적인 방송을 한 이른바 ‘승무원룩북’ 유튜버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영상 삭제 소송을 제기했다. 항공사와 노조는 이 영상이 “승무원들을 성상품화해 인격권을 침해”했고, “승무원들은 성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 등을 겪게 됐다”고 주장했다. 법원의 합의권고로 해당 영상은 삭제됐다.

블랙핑크의 뮤비 속 이 장면은 삭제됐다.

뮤비 장면 논란을 이해하지 못하는 해외 네티즌들의 반응

수년 전 대형 항공사 사주 일가의 갑질 행태가 뉴스를 도배했다. 지금도 ‘00회항’ 하면 갑질의 상징으로 회자될 만큼 해당 항공사의 브랜드 평판을 심각하게 훼손한 사건이다. 이처럼 기업의 평판을 ‘실질적’으로 훼손하고 노동자들의 ‘실제’ 인격과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온라인 콘텐츠 속 유사룩북 표현이 아니라 현실의 갑질 행위이다.

그런데 '00회항 사태'에서 현실의 승무원들은 노조와 비노조원, 담당 업무 등에 따라 단일한 대응 태세를 갖지 않았지만, 룩북사태와 같은 가상의 표현물에 대해서는 단일하게 피해자의 위치에 선다. 이러한 현상들의 공통된 특징은 정치적 올바름(PC주의)이라는 이념적 운동의 자장 안에 있다는 점이다.

정치적 올바름은 실질보다 표현과 상징에 집중하는 특성이 있다. 그러므로 문화적인 표현물을 두고 논란이 벌어진다.

또한 모든 사안에서 사람(집단)들은 피해자의 지위에 서기를 희망하고 핍박받았음을 강조한 후 대가를 요구한다.

PC주의는 대중들이 가진 저마다의 윤리의식, 배려심, 도덕규범, 정의감, 예의와 같은 선한 의지는 물론 이기심, 명예욕, 현실적 이익, 권력의지와 같은 실리나 욕망과도 맞물리면서 확산되는 중이다.(PC주의 운동의 본질적 문제에 대해서는 이선옥닷컴의 글 PC주의 운동의 해악: 동료시민을 손쉽게 혐오주의자로 만드는 일 (1)참조)

구색에 잠식당하는 실질

과거 유명한 정치인이 함께 연탄나르기 봉사를 하던 흑인 유학생에게 가볍게 던진 말 때문에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친근함을 표현하려 격의 없이 던진 “연탄색이랑 얼굴색이 똑같다”는 농담이 뜻밖의 사태로 불거진 것이다.

해당 유학생은 이 발언을 웃으며 넘겼고 인종차별로 인식하지 않았다고 했으며 당시 현장도 화기애애했다고 한다. 그러나 여러 매체가 이를 인종차별 행위로 보도했고 정치인은 정중한 사과문을 올렸다.

비슷하면서 다른 사례를 보자. 이 역시 유명한 정치인이다. 그는 자신이 운영의 책임자로 있는 사업체에 아프리카계 노동자들을 고용했다. 그러나 근로계약서 없음, 형편없는 숙소와 임금 미지급, 여권 압수 등의 부당노동행위로 문제가 됐다.

여러 매체들이 보도하고 노동자들이 직접 항의행동에 나서면서 사측은 체불임금을 지급하고 이들은 귀국을 결정했다. 그러나 화해의 자리로 마련된 기자회견장에서 노동자들은 통역이 없어 의사표현을 하지 못했고 해결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며 불만을 표했다. 이 정치인은 논란 후 사과하고 사업체에서 물러났다.

출처: JTBC

출처: 오마이뉴스

이 두 사례 중 실제 흑인들의 권리를 침해한 것은 어느 쪽인가?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 이 사안에서 실질은 이주노동자 신분인 흑인들의 권리가 침해되었다는 사실이다. 흑인에 대한 호의에 기반한 농담이 그들을 불행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저임금, 주거불안, 감시와 같은 취약한 현실이 그들을 불행하게 만든다.

빈곤과 이주라는 두 가지 이상의 취약한 상태에 놓여 차별적 대우를 받는 현실이야말로 우리사회가 해결해야 할 ‘실제’ 문제인 것이다. 혐오표현에 대해 연구하는 미국의 헌법학자 또한 이러한 '실질'의 문제를 지적한다. 한국의 혐오표현 반대 운동가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숙고이다.

출처: EBS 다큐

관용과 자유가 만들어내는 문화의 번영

다시 앞의 사례로 돌아가보자.

종교 뿐 아니라 법조, 언론, 의료, 교육, 정치, 기업, 예술, 노동 등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영역에서 범죄는 일어난다.

사제, 목사, 승려, 검사, 판사, 기자, 의사, 정치인, 교수, 노조간부, 기업가 모두 범죄를 저지른다. 아무리 고귀한 가치를 추구하는 집단이라 해도 결국 인간들이 모여서 만든 것이고 어디든 빛과 그늘은 함께 존재한다.

이것이 인간 세상의 기본값이다. 문화적으로 성숙한 사회는 이러한 빛과 그늘을 인식하고 어떠한 표현이나, 표현물 안에 등장하는 묘사를 근거로 해당 영역에 대해 흑과 백, 선과 악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실제 해당 영역이나 집단의 명예는 그들이 현실 세계에서 부정적 행위를 저질렀을 때 사회구성원들이 갖게 되는 것이지, 대중문화 속 표현 때문에 일어난 오해가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

산부인과 의사, 간호사, 승무원 모두 전문직으로 인정과 존중을 받는 직종이다. 진입경쟁의 치열함만으로도 이미 직업적 위상은 입증된다.

존중을 표하지 않는 일부는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이어서지 래퍼의 노래를 듣거나, 뮤비 속 장면을 보고 비하의 마음이 생긴 것은 아니다. 수어를 비틀어 썼다고 해서 농인을 비하하거나, 수어 자체의 중요성과 존중의 의미가 폄훼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러한 문화적 소양이 자리잡힌 사회는 내가 속한 영역에 대해 부정적 표현이 등장한다 해도 사회구성원들이 이를 우리의 전부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으므로 공격이나 적대적 행위로 여기지 않는다.

빛나는 창작물들은 그러한 관용의 토대 위에서 만들어진다.

현실 세계에서 해당 영역과 그 영역에 종사하는 이들에 대한 인간적 존중은 작품 속 표현으로 좌우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태도는 그 표현을 도구삼아 존중을 강제하고, 분쟁의 정국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을 얻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거나, 인격을 가질 수 없는 집단적 단위를 주체로 내세워 내부의 자기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정치적 의도에 이용되기 쉽다. 권력의 거간꾼들이 횡포를 부리기 좋은 토양이 된다.

표현에 대한 검열주의자들의 주장대로 말이 칼이 된다면, 말의 영향력이 실제 그토록 위협적이라면, ‘말은 진짜 칼이 아니므로 실제로 아무도 찌를 수 없다’는 말을 강조하는 것이야말로 말의 위협을 방어하는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약자들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목표라면 더 반복적으로 말은 칼이 될 수 없다고 말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위생 언어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멸균목록을 만들어내는 데에 주력할 뿐 면역력의 증가에는 관심이 없다.

표현에 민감한 사회가 아니라 표현에 대한 검열에 민감한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표현 하나에 타격을 입고 휘청거리지 않는 단단한 개인들과, 그러한 개인들이 집합을 이룬 단단한 조직, 단단한 사회일수록 구성원들은 쉽사리 불행해지지 않고 문화 또한 번영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아래 대사는 자기계발서나 힐링서, 멘토링서적 수십권을 압축한 것 같다. 짧은 대사 몇 줄이 어디에서도 얻지 못했던 위안과 위로를 주고,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성찰하게 한다. 이것이 문화예술이 가진 힘임을 새삼 깨닫는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을수록 창작물의 수준은 높고 깊어진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자유의 감각을 장착한 관용에서 비롯된다.

“니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니가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모든 일이 그래.
항상 니가 먼저야.
니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나의 아저씨 中>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명대사를 쉽게 존중이 침해 당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2022-07-04일자 글 수정 후 재업)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