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은 법문 상의 문제와 법안 자체의 정체성 문제가 함께 있다. 인간에 비유하자면 신체와 정신 모두에 심대한 문제를 가진 법이다.
우선 법조항을 하나하나 보면서 법문 상의 문제를 다루는데, 분석의 대상은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당시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의 [2110822] 평등에 관한 법률안(이상민의원 등 24인)법안이다.
이 법안을 택한 이유는 발의에 동참한 의원의 수가 가장 많고, 이상민 전 의원 자신이 법률가 출신의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두 발의자인 정의당의 장혜영 전 의원처럼 소수파이거나, 페미니스트인 권인숙 전 의원처럼 급진적인 부류가 아닌 민주당이라는 진보진영의 주류에 해당해서다.
발의자가 다를지라도 차별금지법(또는 평등법)의 법문은 같은 목적과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는 법이기 때문에 대부분 내용적으로 유사하다.
1. 제2조 총칙: 각기 다른 범주를 한데 섞은 불명확한 법조항
법 제2조(총칙)은 각기 다른 범주에 속하는 요소를 모두 섞어놓은 불명확한 법조항이다:
법 제2조(총칙):
모든 사람은 고용, 재화 용역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 공공서비스의 제공 이용 등 모든 영역에 있어서 정당한 이유없이 성별, 장애, 병력(病歷),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ㆍ유전정보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 지향, 성별정체성, 학력(學歷), 고용형태, 사회적신분 등 어떠한 사유로도 차별을 받지아니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와 평등권을 갖는다. |
2조 총칙은 법문의 대상자와 영역을 규정하는 범주가 나오는데 고정된 것과 고정되지 않은 것, 동일하게 취급이 불가능한 영역을 강제로 섞어놓았다.
'고용, 재화 용역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 공공서비스의 제공 이용 등 모든 영역'에는 전적으로 무관한 영역과 상관이 있는 사항들이 혼재되어 있다.
위 요소 가운데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성별들은 대부분 고정돼있고 존엄의 가치가 명백한 사항들이다. 그런데 나머지 범주들은 다르다.
대표적인 예가 고용이다. 고용의 경우 문제가 되는 분야나 서비스와 관련해 상관성 있는 영역이 많다. 예를 들어 나이는 연금지급과 관련이 있고, 혼인여부는 소득공제와 관련이 있다. 학력은 노동시장에서 어떤 사람의 능력의 신호이고, 불변의 요소가 아니라 바꿀 수 있다.
그런데 불변의 요소와 변화 가능한 요소, 고정된 요소와 그렇지 않은 요소를 다 대등한 성격으로 섞어 수십가지로 나열한 후, '고용에서 차별받지 아니한다'라고 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입법이 정당화되는 구별을 할 수 있는 범주, 즉 원래부터 정당화되던 범주와 그렇지 않은 것이 다 섞이게 된다.
이러한 법문은 세분화해서 다뤄야할 요소를 한번에 집어넣어 결국 모든 규범적인 부담을 '정당한 사유'라는 한 개념에 몰아넣는다. 이는 매우 큰 불명확성을 가진다.
2. 제4조(차별금지와 개념): 이 법의 핵심 조항으로 추상적 법규범이라는 본질적 하자를 드러낸다
제4조(차별금지와 개념)
① 누구든지 이 법에 따른 차별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 이 법에서 차별이란 고용, 재화 용역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 공공서비스의 제공 이용 등 모든 영역에 있어서 정당한 이유 없이 성별, 장애, 병력(病歷),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ㆍ유전정보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學歷), 고용형태, 사회적 신분 등(이하 “성별등”이라 한다) 어떠한 사유로도 개인이나 집단을 분리ㆍ구별ㆍ제한ㆍ배제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말한다. |
입법자가 이전에 금지ㆍ제재ㆍ처벌하지 않았던 영역을 새롭게 금지하고, 제재하고, 처벌하는 영역으로 만들기를 원한다면, 국민들에게 준수할 수 있는 명확한 방안을 알게 해야하는 의무가 있다.
차별금지법처럼 이전에 없던 포괄적 규제법안을 제정할 때는 사람이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특정 영역에서 필수적으로 관련된 사항인 것과 아닌 것을 구별해서 각각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어떤 문제가 주로 일어날 것인지 살펴보는 세심한 입법과정이 의무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에는 그런 과정이 없다.
위 4조에 적시된 "등 어떠한 사유로도"라는 문구는 어떠한 표지에 의한 범주 구별에서도 정당한 사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분리ㆍ구별ㆍ제한ㆍ배제하거나 불리하게 대우받지 아니한다와 똑같은 말이 된다. 이는 법규범으로서 매우 추상적이다.
이렇게 입법을 하면 필히 복잡한 문제들이 생긴다. 이것이 차별금지법의 핵심 문제다. 이 법은 결국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사람을 구별해서 대우할 수가 없다'는 것인데 인간의 모든 사적, 공적 상호작용은 구별 대우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법안은 영역조차 한정하지 않고 '등 모든 영역'이라 규정한다.
예를 들어 친구, 연인, 결혼 상대를 선택하는 일이나 입국자를 선별하는 일은 모두 삶의 영역이자 구별이라는 상호작용이 존재한다. 사적인 영역은 해당하지 않는다고 인식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구별 대우 자체를 차별로 인식하도록 하는 법규범이 만들어지는 순간 수많은 삶의 영역에서 적용범위를 다투는 분쟁부터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외국인의 자녀가 교우관계가 원만하지 못할 때 이를 인종적 편견에 기반한 차별로 신고한다면 교육당국은 차별금지법에 의거해 다루어야 한다.
입법자는 충분한 토론과정을 가져 실제 상황에서 문제되는 것을 확인한 후 그에 맞는 분야별 입법을 하거나, 하나의 법 안에서라도 분야를 나눠 명확한 법문을 만드는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 차별금지법은 모든 삶의 영역에 엄청난 규범적 부담을 부과하면서도 이를 어떻게 준수할 수 있는지 새로운 지침을 하나도 제시하지 않는다.
차별과 차별금지 개념 또한 혼란스럽다.
4조는 분리ㆍ구별ㆍ제한ㆍ배제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차별 행위라고 하여 열거된 행위들을 차별이라고 규정한다. 차별개념을 확정적으로 금지되는 것에도 사용하고, 단순히 사실적으로 분리ㆍ구별ㆍ제한ㆍ배제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사실이 있었다는 것에도 사용한다.
그러면서 스물 다섯가지 차별기준 요소를 나열하고도 '등'을 추가해, 분리ㆍ구별만 해도 사실상 모든 영역에서 금지를 정당화할 수 있는, 모호함으로 뒤덮인 광활한 처벌의 광장을 만들었다
법문 전체가 이처럼 모호하고 추상적인데도 이 법을 추진하는 세력은 스물 다섯까지 차별기준 요소를 최초로 구체화했다며 명확한 법문이라 자평한다.
그러나 허가되는 행위와, 금지되는 행위가 명확하게 적시되지 않은 채, '정당한 이유없는', '등 어떠한 사유로도'와 같은 문구로 이뤄진 개념조항은, 차별금지법이 본질적으로 추상적 법규범의 문제를 가졌음을 보여준다.